세베리아…미로같은 청사·100리길 식사, 시골? 서울 물가 뺨칠 수준
세토피아… 세종호수공원·꽃정원 환상적, 퇴근 후 여유 … 자기계발 ‘열공’ ‘뱀처럼 꼬인 복도’, ‘저녁 식사 100리길’, ‘오전 11시30분 취재는 몰상식’….
18일이면 기자가 세종시로 이사한 지 꼭 한 달이 된다. 때로는 충격적으로, 혹은 신선하게 경험한 일들이지만 이제는 일상이 된 ‘세종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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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인공호수인 중앙호수공원 전경.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호수공원 내 인공섬에서 산책하고 있다. 세종=김범준 기자 |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정부세종청사는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촬영장소에나 맞을 법하다. 국무총리실이 자리한 1동은 용 머리, 공정거래위원회, 세종청사관리소,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환경부로 이어지는 2∼6동이 몸통이다. 출입 첫날 4동 3층 기재부 기자실에서 5동 3층 농식품부 기자실로 가려다가 막다른 벽이 나와 당황했다. 각 동 사이에는 도로가 있어 복도가 막혀 있다. 4층을 통해서만 다른 동으로 갈 수 있다. 청사 복도는 꾸불꾸불하고, 두 길로 나눠지는 곳도 있어 방향감각을 잃기 일쑤다. 용이 아니라 뱀처럼 꼬인 복잡한 건물이다.
1∼6동 복도 길이는 1.4㎞.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 독특한 점심문화는 ‘먼 거리’ 때문에 생겼다. 청사 주변이 공사장이다 보니 변변한 음식점은 3㎞쯤 떨어진 세종시 첫마을에나 있는데 항상 차와 사람들로 북적인다. 청사 구내식당은 초만원이다. 시·도 경계를 넘어 공주, 청주, 유성 등지로 ‘원정 식사’를 떠나는 이들이 줄을 잇는 이유다. 취재에 열을 올리다 오전 11시30분을 넘겼다가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이때쯤 사무실을 나서야 점심 식사 시간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 끼니 때가 다가오면 청사 주변에는 멀리서 달려온 음식점 승합차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밥 먹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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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이 퇴근 후 서울, 경기 등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통근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세종=김범준 기자 |
지난 4월10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출입기자단의 첫 만찬 장소는 계룡산 자락 동학사 부근이었다. 청사에서 왕복 40㎞가 넘는 거리다. 사적인 저녁 모임은 훨씬 더 떨어진 대전에서 갖기도 한다.
세종시가 ‘세베리아’(세종시와 시베리아를 합친 용어)로 종종 불리는 건 이처럼 주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데다 생활 물가도 만만치 않아서다. 첫마을 한 식당의 칼국수는 한 그릇에 6000원. 인근 대전시의 칼국수 평균 가격 4519원보다 25%가량 비싸다. 원룸을 구할 때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월세, 전세가가 싼 편도 아니고 날림공사 탓에 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한 공무원은 이웃의 코고는 소리에 밤잠을 설치곤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선 낙원과 같은 ‘세토피아’가 된다. 기자가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데 3시간가량 걸렸으나 여기선 40분이면 충분하다. 공부나 운동 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청사 옥상에는 나무와 꽃이 수놓인 정원 길이 꾸며져 있다. 인근에는 국내 최대 인공호수인 세종호수공원(61만㎡)의 물결이 손짓한다. 이곳 금요일은 단순히 주말 해방을 고대하는 ‘고마운 금요일’(T.G.I.F)이 아니다. 가족과 상봉을 앞둔 설렘이 가득한 날이다.
세종=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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