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大까지 소모전 예고
권력 투쟁에 바람 잘 날 없는 한나라당과 정족수 미달로 지각 개회한 국무회의. 11일 집권 여당과 내각이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말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집권당과 내각의 행태는 임기 말 국정 난맥을 자초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27 재보선 이후 촉발된 한나라당의 쇄신 바람은 신·구주류의 당권 투쟁으로 번져 일단 신주류의 기선 잡기로 가닥이 잡히는 양상이다. 하지만 6월 말이나 7월 초 열릴 전당대회를 겨냥한 신·구주류 간 세싸움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게다가 신주류 지도부가 중산·서민층 지지를 얻기 위해 감세철회 등 기존의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서 정책 혼선이 예상된다.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이 대통령은 재보선 참패 수습 차원에서 지난 6일 개각을 단행했지만, 내각은 일신(一新)은커녕 기강 해이를 드러냈다. 신임 장관 5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이달 말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여 장관 교체 부서에서 업무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 운영을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였던 한나라당 신·구주류가 11일 ‘일시 휴전’에 합의했다. 소장파와 친박(친박근혜)계가 연대한 신주류와 이재오계와 친이(친이명박) 직계가 주축인 구주류가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이 역할을 분담해 당을 운영하는 ‘어정쩡한 투톱체제’를 수용한 것이다. 사실상 ‘불안한 동거’를 택한 셈이다.
양측의 타협 배경에는 권력투쟁 양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작용한 듯하다. 신주류는 ‘정의화 비대위 체제’를 친이계의 당권장악 의도로 판단, 비대위 재구성을 주장했다. 이에 구주류는 소장파가 ‘주류 흔들기’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려 한다고 맞섰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당 안팎에서는 4·27 재보선에서 패배한 여당이 변화에 대한 민심을 외면한 채 권력투쟁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싸늘한 민심에 부담을 느낀 양측은 결국 ‘파국은 피하고 보자’는 전술적 후퇴를 선택한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실리 측면에서는 신주류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원내대표의 당 대표 권한대행을 관철시킨 데다 비대위 위원을 추가, 구주류가 과반을 차지하는 비대위 구성을 바꿀 수 있는 ‘전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신주류는 6월 말∼7월 초로 예정된 차기 당대표 선출 때까지의 ‘과도체제’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의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비대위원은 바꾸지 않겠지만 원외위원장 1명을 포함해 3명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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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겪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중진회의가 마련한 합의안을 박수로 승인하고 있다. 이범석 기자 |
기세를 올린 신주류는 당 주도권 장악과 당권 도전을 위해 ‘몸집 불리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호랑이 등’을 탄 형국으로 멈칫하면 구주류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소장파는 세를 계속 키우고 있다. 소장파를 중심으로 당 쇄신을 위한 의원 모임 ‘새로운 한나라’는 이날 정식 발족했다. 지난주만 해도 30여명이던 참여 의원은 43명으로 늘었고 남경필(4선), 권영세(3선) 의원을 빼면 모두 초·재선이다. 초선 소장파 모임인 ‘민본21’과 재선급 모임인 ‘통합과 실용’, 그리고 친박계 다수와 정두언 의원 등 수도권 친이계가 포진했다.
구주류는 친이계 모임 색채가 강한 ‘함께 내일로’ 성격 변화를 통해 세결집에 나설 태세다. 한 핵심 의원은 “조만간 ‘내일로’ 운영위를 갖고 순수 정책집단으로 전환하는 것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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