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초기대응 적절했나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 소속 영사들이 재직 당시 한족 출신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거나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국무총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처음 사건을 인지한 이후 단순 치정극으로 보고 해당자를 귀임조치한 뒤 담당부처에 통보하는 것으로 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외교통상부는 처음 조사에서는 기밀유출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황상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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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일으킨 영사들 중국 여성 덩모씨와 불륜 파문에 휩싸인 법무부 소속 H 전 상하이 영사와 외교부 소속 P 전 영사. 이들은 상하이에 근무하던 당시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정·관계 인사 연락처 등 대외비 문건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
◆2011년 11월 상하이에서 무슨 일이
지난해 11월 한족 출신 중국인 덩모씨가 총영사관 영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돌아다니며 이권을 챙기고 있다는 소문이 교민사회에 나돌았다. 급기야 영사들과 덩씨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하는 대자보가 나붙으면서 외교부는 상하이 총영사관에 사실관계 확인을 지시했다.
2009년 8월 비자 영사로 상하이에 파견된 법무부 소속 H 전 영사는 덩씨를 만나면서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덩씨에게 비자를 이중발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H 전 영사는 지난해 11월 법무부로 소환됐다가 올해 초 사직했다.
문제는 덩씨의 이상한 관계가 H 전 영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소 1∼2명의 다른 영사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덩씨의 스파이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덩씨는 H 전 영사 외에도 지식경제부에서 파견나온 K 전 영사와도 애정행각을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K 전 영사는 덩씨에게 “덩씨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다”는 내용을 담은 애정서약서까지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덩씨는 이밖에도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는 물론 외교부 소속의 P 전 영사와도 다정한 모습으로 함께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에 담아두는 등 스캔들 의혹이 제기됐다. P 전 영사는 총리실 조사에서 “2009년 8월 귀국 후 덩씨가 한국에 왔을 때 지인들과 함께 식사했고, 그때 덩씨가 셀카로 찍은 것일 뿐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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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중국여성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의 영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기밀을 빼낸 의혹을 받고 있는 중국 여성 덩모씨.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 처음 사건을 인지한 이후 외교부와 법무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의문이다. 외교부는 상하이 총영사관에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지시를 내렸으나 구체적인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해 11월 사건이 불거졌을 때 스캔들로 판단했지만 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영사들을 조사했을 때 덩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확인했다면 배경이나 원인에 대한 조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경우 비자 이중발급이나 비자 알선 등의 사실은 쉽게 파악됐을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법무부도 H 전 영사를 조사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가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받고 있다. 외교부는 당시 문제가 된 소속 영사 2명을 조기 귀임시키고 해당 부처에 징계 통보했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총영사가 총체적인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것은 맞지만, 다른 부처 파견 공무원들의 경우 비위사실을 통보하는 것에 제한되고 인사조치는 해당 부처가 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총리실은 필요할 경우 김정기 전 총영사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고, 김 전 총영사는 배후 정보기관설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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