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도 어린 여중생을 처참하게 짓밟는 순간을 떠올리는 순간만은 '인간'의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해 보였다.
첫 현장검증 장소인 이 양 집과 같은 층에 있는 빈집에 도착한 김 씨는 중형이 예상되는 피의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했다.
검은색 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고 포승줄에 묶여 현장에 도착한 김길태는 "이곳에 온 적이 있나, 여기서 라면을 끓여 먹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현장검증이 이뤄진 이 양 집에서는 대부분의 질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을 피했다.
"어떻게 이 양을 납치했느냐"는 질문엔 처음엔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이 "DNA 증거물이 있다"고 쏘아 붙이자 "경찰이 증거물이 있다고 하니 할말은 없는데 기억은 안난다"며 "이 자체(현장검증)가 이해가 안된다"며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이 무당집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는 성폭행.살해에 대해서도 김 씨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 발뺌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이 DNA 증거를 말하자 "그러면 내가 한 게 맞는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 살인에 대해선 "강간하면서 입을 막아 죽은 것 같다. 고의는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인면수심'인 그도 한순간만큼은 울먹이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역이 이 양 시신을 묶어 전기매트 가방에 넣고 어깨에 메고 나가는 장면을 재연하자 오른팔로 얼굴을 가리며 울먹거렸다. 그 전에 경찰이 재연을 요구하자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신 유기 방법을 묻는 질문에 대해 "추울까봐 미안해서 우선 물탱크에 시신이 든 가방을 던져넣고 나와서 대야에 석회가루를 탔다. 그리고 물탱크에 석회가루와 봉지를 넣고 뚜껑을 닫은 뒤 그 위에 벽돌을 올려놨다"고 말해 경찰관들을 어이없게 했다.
당돌하고 호기를 부리는 모습도 보였다. 현장검증을 참관하던 검사가 "범행 시간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검사님, 당시 시계를 볼 수도 있었지만 보지는 않았다. 그럴 정신이 있었겠느냐"고 따지듯 말했다.
현장검증을 구경하던 주민 500여 명은 김 씨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살인자야, 낯짝 들어. 얼굴이나 한 번 보자. 너가 사람이냐"며 고함을 질렀고 일부 중년 여성들은 김 씨를 따라다니며 욕설을 퍼부었다.
김길태가 파란대문 집을 빠져나오는 순간 이를 지켜보던 덕포여중 학생들은 학교 교실 창문을 통해 "길태, 이 나쁜 ××야, ○○ 살려내, 모자 벗어"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덕포여중은 이 양이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다녔을 학교다.
김 씨는 주민들의 고함과 욕설 속에 고개를 푹 숙인 채 경찰들에 이끌려 현장검증 장소를 빠져나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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