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태웅에겐 ‘엄포스’라는 애칭과 함께 ‘과묵’이라는 수사가 따라다닌다. 드라마 ‘부활’(2005) 등에서 발산한 강렬한 카리스마와 영화 ‘가족의 탄생’(2006),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등에서 보여준 깊이있는 연기 내공을 무기로 어느덧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장악해버리는 대표적인 30대 배우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쉬이 드러내지 않는 속내와 현실을 애써 과장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다. 1998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의 단역으로 연기 입문해 내리 8년간이나 무명의 세월을 보내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로 짐작되는 이 태도는, 그러나 2009년을 돌이킬 때만큼은 예외다.
엄태웅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9년은 데뷔 이래 내 생애 최고의 해가 아니었나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단지 결과가 좋아서는 아니다. 데뷔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딱히 자신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답답하고 불안하던 차에 이들 작품을 만나게 됐고 지난 1년을 엄태웅보다는 오승민(‘핸드폰’)과 김순경(‘차우’), 김유신(‘선덕여왕’)으로 산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재된 열정을 여한없이 쏟아낸 한해였기 때문이다. 엄태웅은 “정말 정신없이 달려온 1년이었다”면서 “쉼없는 도전이었고 소중한 작업이었으며 쑥스럽지만 달콤한 열매”라고 떠올렸다.
그에게는 첫 62회 대작이자 정통 사극이었던 ‘선덕여왕’은 특히 각별하다. 엄태웅은 한 치의 요령도 허하지 않는 김유신의 우직함에서 가끔 매사 워낙 느려터져 스스로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화랑 시절 목검으로 바위를 만 번 이상 내리치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르고 흔들리는 원칙을 다잡았던 유신처럼, 그 역시 “연기의 정점은 없다”는 원칙을 의심치 않는다면 이전의 불안은 순간의 혼란에 그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엄태웅은 2009년을 곱씹으며 올해 또 한번 열심히 달려볼 참이다. 그는 “연기에 입문한 12년 전 호랑이의 해처럼 띠해인 올해도 배우 인생에서 뭔가 의미있는 족적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전보다 더 열심히 뛰는 모습으로 찾아뵐 테니 세계일보 독자 여러분도 건강하고 복 많이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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