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는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로 여기지기도 하지만,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돼 왔다. 또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했다. 우리 조상은 이런 호랑이를 좋으면서 싫고, 무서워하면서 우러러봤다.
호랑이를 산신이라고 생각해 호랑이에 대한 제를 지내기도 했다. 동예(東濊)에서는 제호이위신(祭虎以爲神)이라고 했다. 깊은 산에 사는 호랑이에 대한 숭배와 신앙은 비단 동예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한반도 전체의 보편적인 신앙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민속학자들의 추정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호랑이 기록은 ‘삼국유사’ 권1 고조선 조에 보이는 단군신화이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에게 빌어 곰은 신의 계율을 지켜 사람이 되었고, 호랑이는 그러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신라 진덕여왕 때 여섯 지도자가 경주 남산에서 국사를 의논하고 있는데, 별안간 큰 호랑이가 좌중으로 달려들었다. 모든 사람이 놀라 일어났으나, 알천공(閼川公)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자약히 담소하면서 이 호랑이의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어쳐 죽였다. 또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어릴 때, 그의 아버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견훤의 어머니가 밥을 내가기 위해 그를 수풀 아래에 두었더니 범이 와서 젖을 먹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태몽에도 자주 등장한다. 태몽 속에서의 호랑이는 장차 태어날 아이의 신분·인격·운수·명예·권리 등을 나타낸다. 꿈에 ‘호랑이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호랑이에 물렸다’ ‘호랑이와 싸워 이겼다’ ‘호랑이를 잡아 죽였다’ 등 직접적인 접촉을 하면 길몽 중의 길몽이다. 호랑이는 명예·권세·승리 등을 상징하기 때문에 호랑이 꿈을 좋아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시작되는 옛날 이야기 속에는 으레 재미있는 호랑이 이야기가 있다. 힘세고 날래지만 한없이 어리석어 사람에게는 물론 토끼나 여우·까치 등에게 골탕먹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있다. 반면, 호랑이가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이나 짐승으로 변신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의(義)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런 동물로 등장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는 신성한 동물의 첫째는 호랑이다. 호랑이는 조선 최대의 동물로 조선인의 신화·전설·동화를 통해 나타난 호랑이 이야기들은 설화 세계에서 최고”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민속연구과장은 “호랑이는 설화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호랑이는 시부모를 위해 자신의 어린 자식을 추운 겨울날 버리려는 효부를 칭송하여 도움을 주며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복을 주는 호랑이로 그려지고 있다”며 “우리 민족의 효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이 교훈적 목적과 결탁돼 자주 등장한다”고 말했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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