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미세계] 한식세계화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어려운 일이 ‘어떤 메뉴를 세계화할 것인가’다. 건강에 좋고 맛도 좋지만 경쟁력 있는 메뉴를 가지고 세계인에 맞는 적절한 맛을 개발하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다.
아직도 외국에 있는 한식당에는 수십 가지 메뉴가 즐비하지만 이곳을 찾는 외국인은 많지 않은 상황이고, 국내외 고급 한정식 식당은 일반인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세계인이 부담 없이 즐기는 피자, 햄버거, 스시처럼 한식이 대중화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메뉴로 ‘떡볶이·비빔밥·막걸리·김치’를 4대 대표메뉴로 선정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약간의 의견차는 있지만 이들 메뉴를 중심으로 한식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떡볶이는 패스트푸드처럼 간편하게 즐길 수 있고 레시피에 따라 다양한 메뉴 개발이 가능해 성장가능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비빔밥은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가 한 끼 식사로 좋은데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양에서도 인지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막걸리도 최근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 수출량이 증가하고 있다. 김치는 이미 세계시장에서 발효 건강식품으로 주목받으며 업계는 다양한 신메뉴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4대 메뉴를 중심으로 한식세계화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 떡볶이 - ‘떡 질감·매운맛’ 연구 관건
지난 3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는 ‘2009 서울 떡볶이 페스티벌’이 열렸다. 포장마차에서 즐기는 간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떡볶이가 세계화 메뉴로써의 가능성을 점검받는 자리였다.
정부는 떡볶이세계화에 5년간 14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새 중등교과서에는 한국음식의 하나로 떡볶이를 소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 지원으로 지난 5월 떡볶이연구소도 설립됐다.
연구소는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소스의 표준화, 매뉴얼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또 중소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해외시장에 나설 수 있도록 기술지원을 해주고 프랜차이즈 모델 개발·교육 등을 돕는다. 이미 떡볶이연구소 지원을 통해 중국과 일본 등에 전문점이 설립됐다. 중국 북경엔 온가 , 일본 요코하마엔 국제떡볶이 가 오픈했다.
떡볶이 세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떡의 질감 이다. 외국인들은 떡의 끈적임을 싫어한다. 매운맛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도 관건이다. 깔끔하고 맛있으면서 저렴하고 또 고급스런 음식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한국인 중에도 떡볶이가 궁중음식이 시초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역사성 있는 고급음식의 이미지를 적극 홍보할 필요가 있다.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영양성분을 갖추기 위한 메뉴 개발도 중요해 보인다. 특히 단백질 성분이 함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떡볶이 사업에 주력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올 들어 국내에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급속하게 난립하는 것도 문제다. 2009년 국내에 신규 오픈한 떡볶이 전문점만 수백 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 계획을 가지고 떡볶이세계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이벤트성 행사로는 ‘반짝 붐’ 그치고 말 것"이라고 했다.
◆ 비빔밥 - 현지에 맞는 메뉴개발 시급
떡볶이가 아직까지 '간식'이라는 개념이 강하다면, 비빔밥은 한 끼 식사 로 전혀 손색이 없다. 외식 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비빔밥이 세계화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메뉴라고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지난 15일 비빔밥을 소재로 한 비언어극 ‘비밥코리아’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초연됐다. 8명의 요리사가 요리달인으로부터 비법을 전수해 최고의 비빔밥을 만든다는 줄거리를 마임, 비트박스, 아카펠라, 비보잉 등으로 표현했다. 농림수산식품부와 CJ엔터테인먼트가 제작비를 공동 지원했다.
'비밥코리아'는 당분간 국제행사, 국내 축제 등에서 공연될 예정이며 공연이 끝나면 즉석에서 비빔밥이 제공된다. 정부는 비밥코리아를 통해 비빔밥을 세계인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비빔밥은 이미 기내식이나 즉석식품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조리법이 간편하고 표준화가 용이해 특히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기에 적합하다. '웰빙'에 맞춘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한식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맛과 서비스 방식을 세계인의 취향에 맞추기도 용이한 메뉴다. 모던 한식으로 스시를 뛰어넘는 메뉴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빔밥 역시 현지인 입맛에 맞는 메뉴개발이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미 일본에는 일본사람이 ‘안녕’이란 이름의 돌솥비빔밥집을 열어 히트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전통 맛을 살리면서 고추장 등의 소스를 일본인 입맛에 맞게 수정하고, 돈가스 비빔밥, 명란 비빔밥 등 신 메뉴도 추가하면서 일본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인이 해외에서 연 비빔밥 전문점은 성공사례를 찾기 힘들다. 중국에 대장금 이란 비빔밥 체인점이 거의 유일하다.
◆ 막걸리 - 와인 뛰어넘을 수 있을까
2009년은 '막걸리의 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풍이 뜨거웠다. 특히 일본에서 젊은층과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와인이나 일본 사케 등은 이미 세계화에 성공한 주류다.
술은 하나의 문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국가 경쟁력과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전통주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전통막걸리 역시 세계화에 전혀 손색이 없는 맛과 영양, 역사성, 가격 경쟁력 등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 숙취의 대명사로 불리던 막걸리가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과일을 넣은 이색 막걸리도 호응이 좋다. 도수가 높지 않아 부담이 없는데다 과일이 들어있어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고 있다.
막걸리는 발효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된장·고추장·김치 등과 함께 대표 발효식품인 막걸리에는 한 병당 유산균이 요구르트보다 100배나 많다. 그 외에도 단백질, 탄수화물, 식이섬유, 비타민 B·C, 유기산 등이 함유돼 있다.
막걸리가 인기를 끌자 정부는 오는 11월부터 일본에서 막걸리 TV 광고를 하기로 했다. 민간업체가 아닌 정부가 나서서 특정 상품을 광고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벌써부터 업계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막걸리 세계화를 위해선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판로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홍보활동도 시급하다. 떡볶이(Topokki)나 김치(kimchi)와 같은 막걸리의 공식 영문표기명 조차 아직 없는 상태다. 해외 수출용 막걸리에 서울탁주는 라이스 와인(Rice Wine)으로, 이동주조와 국순당은 마코리(Maccori)와 마콜리(Makkoli) 등으로 제각각 다르게 표기하고 있다.
막걸리 세계화를 위해선 전통주 전문가이드 육성도 중요한 과제다. 와인의 소믈리에나 사케의 키키사케시와 같은 가이드를 육성해 세계화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김치 - 총체적 기술로 재탄생 해야
전통음식 전문가들은 한식세계화의 출발은 '김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치는 한식의 기본 반찬으로 특히 발효식품으로써의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각광받고 있다.
김치에는 젖산균이 풍부하다. 마늘은 절임배추에서 대장균 등 나쁜 균이 자라는 것을 막고 이로운 젖산균이 잘 생육하도록 돕는다.
잘 익은 김치의 경우 손톱만큼의 국물에 10억 개나 되는 젖산균이 들어 있다. 젖산균은 우리 대장에 들어가 자라면서 나쁜 병균을 물리치고 장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광주광역시에서는 10월23일부터 열흘 동안 광주김치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16회째를 맞는 이 축제에 올해부터 '문화'라는 단어가 포함된 데에는 김치가 한국의 문화를 반영한 대표음식이라는 자부심이 녹아있다.
정부는 오는 12월 광주에 세계김치연구소를 설립키로 했다. 이 연구소는 김치 세계화를 위한 다양한 연구개발과 기술지원을 할 예정이다.
민간 기업의 노력도 뜨겁다. 한성식품은 전통김치부터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김치초콜릿 등 이색 메뉴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김치 특유의 냄새와 운송의 어려움을 해결한 동결건조김치도 있다. 포장을 뜯어 물만 부으면 원래 맛의 80% 이상을 재현한다. 생김치처럼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좋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김치찌개가 된다.
김치 세계화를 위해선 생산·저장·유통 기술부터, 절임이나 발효·포장·위생 등에 있어 총체적인 기술 개발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기계화와 자동화 기술 개발도 시급하다.
명품김치 브랜드를 키우고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홍보 활동도 필요하다. 또한 김치와 궁합이 잘 맞는 우리음식 메뉴 개발 등도 뒤따라야 한다. 한 전문가는 “김치 세계화는 결국 한정식 세계화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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