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중에도 반년넘게 안보강연 ‘아연’ 보안 유지를 최우선하는 군인들이 여간첩과 놀아났다는 소식에 군당국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군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위관장교가 여간첩 원정화(34)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을 방조하고, 군수사기관이 내사에 착수한 뒤에도 반년 넘는 동안 일선 군 부대에서 간첩의 안보강연이 지속된 것으로 밝혀지자 군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군은 지난 6월에도 육군의 현역 위관장교 10여명이 400억원대의 초대형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바 있어 충격은 곱절이다.
27일 기무사령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중국에 있는 북한 보위부 소속원의 지령을 받고 남한에 침투한 원씨는 북의 지령에 따라 군부대 안보강연 강사로 활동하면서 포섭대상으로 군 장교들을 물색했다.
처음 덫에 걸려든 인물은 2006년 11월 모 사단에서 정훈장교로 근무 중이던 황모(26·구속) 대위. 황 대위는 안보강연 차 부대를 찾은 원씨와 연락을 주고받다가 성관계를 맺은 뒤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원씨에게 푹 빠진 황 대위는 지난해 10월 원씨가 “나는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다. 내 임무는 탈북자 출신 안보강연 강사 신원을 파악해 북에 보고하고 군 간부를 포섭하는 것이다. 너도 포섭했다고 조국(북)에 보고했다”고까지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황 대위가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 원씨를 사랑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원씨와 접촉한 현역은 모두 7명. 구멍뚫린 군의 보안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군 수사기관의 수사에도 허점을 드러냈다.
원씨는 2006년 1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일선 군 부대를 돌아다니며 현역 장병을 대상으로 52차례에 걸쳐 안보강연을 실시했다.
기무사 등의 수사결과 원씨는 강연에서 ‘아리랑 축전’, ‘조선의 노래’ 등 북한을 찬양하는 CD를 상영하고, 강연 도중 때때로 ‘6.25전쟁은 미국, 일본 때문’이라거나 ‘북핵은 체제 보장용’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통해 북한의 주장을 선전했다.
이에 기무사는 2006년 12월 북한 체제 찬양용 CD를 회수하고 경고했으나 원씨는 지난해 5월까지도 군 당국을 속이고 인보강연을 통해 CD를 상영하거나 북한 체제 찬양 발언을 해왔다고 밝혔다. 이는 일선에 있는 현역 군 장병들이 사실상 군 수사기관의 묵인 아래 북한의 체제 선전에 그대로 노출됐음을 의미한다.
기무사 관계자는 “강연 기간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원씨로부터 불법 CD를 회수하거나 경고조치를 취했고, 2007년 3월에는 북 체제 찬양 CD를 원씨가 중국의 북한영사관에서 가져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원씨가 지난해 3월 이후 2개월이나 더 안보강사로 나서 북 체제를 선전하거나 군 장교와 교제를 하며 군의 기밀을 캐고 다녔다는 것은 군의 이 같은 해명을 무색케 하고 있다.
박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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