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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의감성엽서] ‘매미’를 펼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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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19 23:05:06 수정 : 2025-08-19 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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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물을 주려다 창문 안으로 들어온 매미를 발견했다. 어떻게 들어왔지? 밝은 햇살에 비치는 매미의 긴 날개가 너무 투명하고 예뻐 한참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매미도 참 아름답네! 밖으로 내보내니 날개를 활짝 펴고 쌩하니 날아간다. 앗, 사진을 찍어둘걸. 이렇게 가까이서 매미를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인데. 한데 어떻게 들어왔지?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숀 탠의 그림책 ‘매미’ 속에서 나왔나?

그 매미는 우리나라 참매미가 아니라 미국 중서부 지역에 사는 주기매미인데. 땅속에서 17년이란 긴 기간을 유충으로 사는. 어쨌든 ‘매미’를 읽는데 매미가 내 창으로 날아들어 온, 이런 우연의 일치! 이것도 일종의 행운이라면 행운이 아닐까.

창에서 돌아서려는데 우렁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매미들의 합창 소리. 앞쪽은 참매미들 합창단 같고 뒤쪽은 말매미들 합창단 같다. 그래도 매미 합창단은 오랫동안 익숙한 참매미들 합창단이 최고지. 매미는 맴맴맴맴∼ 울어야 제맛이니까.

다시 숀 탠의 ‘매미’를 펼친다. 이 책의 주인공 매미는 ‘매미’라는 이름표를 달고 회색 고층빌딩에서 인간들과 함께 데이터 입력 사무원으로 일한다. 말이 사무원이지 그는 집도 없이 사무실 벽 틈에 살면서 거의 밤낮으로 일한다. 제대로 쉬는 날도 없이.

그래도 인간 동료들은 그를 무시하고 그에게 못되게 굴고, 화장실조차 따로 쓰며 철저히 차별 대우를 한다. 그래도 그는 묵묵히 일한다. 언제나 톡 톡 톡! 성실히 데이터를 입력하며.

그러다 17년째 되는 해, 그는 그 직장을 은퇴하고, 그 빌딩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러곤 제 껍질을 벗고(우화), 찬란하게 성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 참으로 기발한 상상력이며 대단한 카타르시스다. 나는 왜 매미를 두고 이런 생각을 못 했지? 역시 천재들은 다르구나! 그 맛 때문에 나는 숀 탠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화가이면서 그림책 작가이다. 그림을 정말 재밌게, 독특하게 그린다.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

그의 그림책 ‘도착’을 보면 글자 한 자 없이도 이주자들의 애환과 공포를 놀랍도록 잘 표현해 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들이 예쁘고 아름다운 건 절대 아니다. 어떤 그림은 어둡고 칙칙하고 괴기한 초현실주의에 가깝다. 그럼에도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그림으로 광내고 잘 버무려낸다. 내공이 아주 깊은 작가다.

그런 화가들의 그림에서 詩를 배운 지도 수십 년이 흘렀건만, 내 평범으론 언제나 비범한 그들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래도 괜찮다. 그들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그 사랑은 내게 무한한 상상력과 지구력, 진취성까지 골고루 안겨주니까.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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