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간 위화감 조성 논란 재연
단기적이나마 내수 진작 감안
흠집 들추기 대신 지혜 결집을
개인적으로 처음 ‘정권이 바뀌었구나’ 실감했던 때가 지난달 23일이었다. 광주와 부산 등에서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 등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는 주민의 소득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선불카드를 발급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지 하루 만에 “즉각 바로잡으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조치”라고 질타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했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빨리, 같은 선출직인 광역단체장에게 대놓고 시정 요구를 할지는 몰랐다. 사태 원인을 먼저 짚은 뒤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모양새도 전임 대통령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던 면모였다. 돌이켜보면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모든 도민 대상 재난지원금을 실험하고 보편·선별 혼합지급을 통해 대규모 국가보조금 안정화에 나선 이 대통령 입장에선 ‘행정편의’, ‘낙인효과’의 폭발력과 휘발성을 감안한 본능적인 대응이 아니었나 싶다.

대규모 국가보조금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줘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언제’와 관련해 집권여당은 ‘경기회복의 골든타임을 위한 신속한 편성과 속도감 있는 집행’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6월 말 국회 시정연설에서 30조5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이 “경제위기 해소를 위한 마중물이자 경제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누구에게 줄 것인가’는 과거와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다. 경기지사 시절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을 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느냐”고 말했던 이 대통령은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선 아예 보편·선별을 섞어버렸다. 1차엔 전 국민을 대상으로 15만원 지급을 기본으로 하되 비수도권·인구소멸지역, 취약계층에는 3만∼15만원을 더 얹어주고 10만원씩 추가 지급하는 2차에선 상위 10%를 제외했다.
이는 코로나19 지원금 지급과정에서 불거졌던 보편지급의 경제적 효과 논란과 선별지급 기준선 안팎의 형평성 시비, 소득 상·하위층의 반발 등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코로나19 기간 지급된 지원금의 한계소비성향(가구별 100의 지원금을 줬을 때 얼마를 소비했느냐를 나타낸 비율)이 1인가구의 경우 소득하위 20%는 91.2%에 달했지만 소득상위 20∼40%는 28.8%에 그쳤다고 했다. 아울러 지급 직후 소상공인 매출은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효과는 3∼4주를 넘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달 소비쿠폰 2차분 지급을 앞두고 열악한 국가재정 대비 전 국민 대상 현금성 지원의 효과성 및 선별지급에 따른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등 해묵은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소비쿠폰이 ‘대통령 당선 축하금 아니냐’는 일각의 조롱은 13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밥 먹고, 식료품 사는 데 날리느니 미래성장동력에 대한 투자 등에 쓰는 게 경제 회복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근거에서 비롯한다.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국민 90%에게 지급하겠다’는 지급 기준은 수십억∼수백억원으로 추산되는 행정비용은 물론 경계선상의 미지급자들과 상대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고소득층의 반발을 야기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장·단기나 업종 구분 없이 즉각적인 성과를 내는 경기부양책은 없다는 것이다. ‘현금 살포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 소비쿠폰 역시 단기적이나마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된다. 현금성 지원도 지난 5년간 이름만큼이나 지급 대상이나 방식에서 보다 가성비가 뛰어난 쪽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1차 재난지원금 때 의견 제기 수준의 보편지급·선별환수 방식은 소득수준에 따라 기본공제금액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법제화가 진행 중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M 케인스는 “번영은 일회적인 게 아니라 누적적으로 이뤄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극이고 충격이고 가속”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한국 사회에 긴요한 것은 흠집내기가 아닌 보편지급에 관한 지난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또 한번의 경제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무엇인지를 대승적으로 논의하는 태도 변화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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