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의 원형 만든 뮤지션
마지막 공연 후 마왕다운 퇴장
이보다 멋지게 떠날 수 있을까
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양문학은 호메로스의 변형, 서양음악은 바흐의 변주라 불린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사유와 예술이 태어난다는 은유다. 그렇다면 록 음악은 어떨까. “세상에 존재하는 끝내주는 리프는 이미 블랙 사바스가 다 써먹었다. 우리는 그걸 빠르게, 느리게, 혹은 거꾸로 연주할 뿐.” 록 밴드 블랙 사바스에 바친 후배 뮤지션의 헌사다. 지난 7월22일, 이 전설적인 밴드의 프런트맨, 오지 오즈번이 세상을 떠났다.
블랙 사바스는 1968년 영국 버밍엄의 공업지대에서 태어났다. 금속공장의 굉음과 매연, 산업화의 그을음을 배경으로 한다. 밴드명은 ‘검은 안식일’을 뜻한다. 평화와 휴식을 상징하는 ‘안식일(Sabbath)’ 앞에 ‘검은(Black)’을 붙여 의미를 전복했다. 1960년대 말, 히피 문화가 퇴조하고 이상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허무와 불안이었다. 기독교적 질서에 대한 반항, 베트남전쟁과 산업사회의 잿빛 잔해가 그들 음악의 토양이었다.

그 중심에 오지 오즈번이 있었다. 묵직한 리프 위에 얹힌 오지의 금속성 보컬, 어둠과 고통을 끌어안은 주제 의식은 헤비메탈의 원형을 만들었다. 솔로 데뷔 후에도 그는 짙은 아이라인, 광기와 카리스마로 무대를 지배하며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마지막 무대는 7월5일, 고향 버밍엄의 빌라 파크였다. 파킨슨병으로 내내 의자에 앉아 노래했지만, 여전히 ‘어둠의 군주’였다. 팬들은 마지막을 예감한 듯 눈물을 흘렸다. 4만여 관중과 뜨거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보름 뒤, 그는 눈을 감았다. 향년 76세, 마왕다운 퇴장이었다.
오지 오즈번의 악마적 이미지에 압도되어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막상 귀를 기울이면 의외로 따뜻하고 처연하다.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이 스며 있다. 아름답다. 어두운 것, 기괴한 것, 음울한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지 오즈번에게서 배웠다.
학창 시절, 턴테이블 위의 LP가 비틀스에서 오지 오즈번으로 바뀌던 순간은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났을 때의 전율과 닮아 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이야기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문장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는 영지주의 전통에서 선과 악, 빛과 어둠, 창조와 파괴를 모두 품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세상이 도덕과 질서만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불의와 혼돈, 욕망과 상처가 뒤엉켜 있음을 드러낸다. ‘데미안’이 표류하는 젊음을 위로하는 고전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지 오즈번은 그 오컬트적 이미지로 인해 보수 종교 단체의 단골 표적이었다. 심지어 법정에 서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이 아브락사스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니체를 만날 수 있다. 니체는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 가두는 도덕을 거부하고, 고통과 혼돈을 삶의 본질로 긍정했다. 절대적 가치의 붕괴를 선언한 “신은 죽었다”는 말로 압축된다. 그러나 당대인에게 그의 철학은 끔찍한 신성모독일 뿐이었다. 니체의 말년은 처참할 만큼 고독했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벌어진 한 장면이 전승으로 전해진다. 한겨울, 광장 근처 골목에서 마부가 말을 심하게 채찍질하자, 니체가 달려가 그 말을 끌어안고 흐느꼈다는 이야기다. 직후 그는 의식이 무너져 정신병원에 수용됐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10여년을 침묵에 갇혔다.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판단 능력도 회복하지 못했다. 신을 폐위시키고 인간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라던 그의 선언은 쓸쓸한 죽음 뒤에야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갑자기 니체의 마지막이 떠오른 것은 오지 오즈번이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남긴 인터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멋지게 떠날 수 있을까.” 그런 작별이 가능했던 건, 한 세기 전 니체와 헤세 같은 선구자들이 금기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선과 악을 동시에 품은 ‘저승사자’가 K팝을 노래하고, 그 무대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30년 넘게 간직해 온 오지 오즈번의 첫 솔로 앨범 ‘블리자드 오브 오즈(Blizzard of Ozz)’를 꺼내 든다. 커버는 여전히 기괴하다. 바닥에 놓인 해골, 붉은 망토, 얼굴 절반을 삼킨 어둠. 그러나 음반 속에서 내가 닳도록 들은 곡은 정반대의 온기를 품고 있다. ‘굿바이 투 로맨스(Goodbye to Romance)’. 가사는 이렇다. “꿈같던 사랑과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했어. 모든 과거와도 작별했어. 하지만 우린 다시 만날 거야. 결국 우린 다시 만나게 되겠지.” 데미안을 만났던 10대, 니체를 탐독하던 20대, 열병처럼 타오르다 사라진 날들이 차례로 스쳐 간다. 뜨겁던 여름의 기운이 물러가듯,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물고 있다. 이제는 그에게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굿바이, 오지 오즈번.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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