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美와 협상 때 최혜국 대우 약속
韓 반도체 100% 관세 맞을 일 없을 것”
삼성·SK, 파운드리 등 美 공장 건설 중
대만 “TSMC 美 공장 운영… 면제 대상”
동아시아 중심 공급망, 美로 재편 의지
대미 투자 확대 땐 국내 일자리 등 영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반도체 관세율 100%’라는 강수를 던지면서 반도체 업계의 고심이 깊어졌다. 정부는 한·미 관세협정으로 최혜국대우(MFN)를 약속받았기에 당장 한국이 경쟁국보다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중장기적 영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에 더 많은 공장을 지으라’는 메시지이기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서는 향후 대미 투자 수위를 두고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집적회로와 반도체”가 부과 대상이라고 밝혔다. 관세 100%가 현실화하면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휘청일 수밖에 없지만, 타격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미국이 최혜국대우를 약속한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에 투자할 경우 관세 면제를 시사해서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SBS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는 이번에 협상 타결을 하면서 미래의 관세, 특히 반도체나 바이오 부분에서는 최혜국대우를 (미국이) 주는 걸로 했다”며 “만약에 15%로 (미국의 반도체) 최혜국 세율이 정해진다고 하면 우리도 15%를 받는 것으로, 앞으로 100%가 되건 200%가 되건 상관없다”고 말했다. 최혜국대우는 국제 무역 협정에서 제3국에 부여하고 있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상대국에 해주는 원칙이다. 반도체 관세에서 미국이 한 국가라도 예외를 허용하면 한국도 동일한 조건을 적용받는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도 “관세가 가시화돼 시장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건 부정적이지만 관세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한국의 상대적 위치”라며 “최혜국대우가 있기에 불리한 상황이라 하기는 힘들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공장을 건설한다면 부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서를 단 것도 변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투자했거나 투자할 계획이 있는 기업은 관세 부과가 면제된다고 밝혔다”며 “TSMC는 물론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면제 조건에 해당하는 기업이기에 단기 수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건설 중인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에 2030년까지 37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만도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가 생산한 반도체의 관세 면제를 공언하며 다른 나라 업체와의 경쟁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AFP통신에 따르면 류징칭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주임위원(장관급)은 의회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한 반도체 관세가 TSMC에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일부 대만 반도체 업체들은 100% 관세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들의 경쟁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관세를 적용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는 (관세 영향에 대한) 예비적 의견이며, 앞으로 계속 상황을 관찰하고 중단기 지원책을 제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 이면에는 현재 동아시아 중심인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자국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이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가 확대될 경우 한국 내 투자·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은 미국에 반도체 제조기지를 육성하는 것과 아울러 반도체가 AI 시대의 핵심이기에 미래 기술 패권을 미국이 이끌어가겠다는 뜻”이라며 “국내 정치적으로는 지지층을 향해 일자리 창출과 제조업 부흥이라는 메시지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형성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의 투자 여력이 미국에 많이 집중돼야 하기에 아무래도 국내 생산이 감소하게 되고 일자리 등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 기업에 미칠 간접 영향도 고민거리다. 이청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반도체 관세로) 세트(완제품) 업체들의 제품 가격이 올라가게 되면,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부품 업체에 가격 하락 압박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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