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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제주 바다에 뜬 푸른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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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06 23:20:55 수정 : 2025-08-06 23: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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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아열대 서식하는 해파리
뜨거워진 바다타고 제주 유입
생태계 변화 리트머스 시험지
가속하는 기후위기 대비 절실

지난 8월1일 오랜만에 제주도 표선해수욕장을 찾았다. 여름 한 철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해수욕장을 찾는 데는 걱정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기우였다. 그늘막과 파라솔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고 샤워장과 화장실은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들은 친절했고 곳곳의 안전요원들은 늠름했다.

정작 불편함은 물속에서 느끼게 되었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가 아닌 한낮의 햇살 아래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게 문제였는지 모른다.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던 나는 예상치 못한 감각에 잠시 멈칫했다. 물이 너무 뜨거웠다. 피부를 감싸는 시원한 바닷물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미지근한 욕조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아기 목욕에 알맞은 온도였다. 딱 체온 정도라고 느꼈다. 바닷가에서 자라 여름마다 바다에 드나들던 나에게는 낯선 온도였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이 낯섦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물속에는 처음 보는 해파리들이 느릿느릿 떠다니고 있었다. 지름 3∼4㎝ 되는 반투명한 파란 우산 모양의 몸체 아래로 수많은 촉수가 하늘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이토록 화려한 색의 해파리를 나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본 적이 없다. 해변으로 나와 검색해 보니 이 낯선 생물의 이름은 푸른우산관해파리(Porpita spp.)였다. 원래 제주 바다에는 없던 열대 종이다.

푸른우산관해파리는 인도양과 남서태평양, 필리핀 근해 같은 열대와 아열대 해역에 주로 서식한다. 이름처럼 파란 우산 모양의 몸체를 지녔고, 전체적으로 청자색을 띠어 햇빛 아래에서는 유리 공예품처럼 반짝인다. 성체는 지름 40∼60㎝까지 자랄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까지 큰 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길게 늘어진 촉수에는 강한 독이 없지만 몸체와 촉수 전체에는 약한 독성이 있어 접촉 시 따가움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가끔 “이게 뭐야!”라며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손으로 물결을 일으켜 밀어내며 해수욕을 즐겼다.

그렇다면 푸른우산관해파리는 누구일까? 아름답지만 낯선 손님이다. 그리고 그 출현은 단순히 희귀 생물의 방문으로 여길 수만은 없다. 더위로 끓어오른 제주 연안의 바다, 그 뜨거운 물길을 타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해 온 존재다. 뜨거워진 바닷물이 이들을 북쪽으로 이끌었고, 그 결과 제주라는 섬의 생태계는 새로운 생물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지난 30년간 제주 해역의 연평균 수온은 꾸준히 상승해 왔다. 과거 여름철 수온이 25도 안팎이었다면 이제는 28도를 넘어서는 일이 잦아졌고, 겨울철에도 17도 이상을 유지하는 날이 많다. 이는 제주가 생태학적으로 아열대 해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제주 연안에는 쏠배감펭과 파랑돔 같은 남방계 어종들이 정착하고 있다. 산호 역시 변화 중이다. 기존의 냉수성 연산호는 점차 사라지고 열대성 산호가 서식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제 해파리마저 그 대열에 합류했다.

푸른우산관해파리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기후 변화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해파리는 주변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하며 수온 상승에 따라 가장 먼저 이동하는 종 중 하나다. 이들은 말이 없지만 존재 자체로 바다의 상태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푸른우산관해파리는 어쩌면 우리에게 경고하러 온 특사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메시지를 우리가 읽을 수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속도와 방향은 여전히 우리가 조절할 수 있다. 제주 바다는 지금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바다는 예전의 바다가 아니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수면 위로 떠올랐고 우리는 그 신호를 알아차려야 한다. 푸른우산을 쓴 해파리가 제주 바다에 떠 있는 오늘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기후 변화는 과학자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매일 만나는 바다, 우리가 발을 담그는 해수욕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푸른 바다가 여전히 푸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는 변하고 있다. 그 변화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일이 우리가 바다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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