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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북한 돼간다"며 탈출한 여성, 러 되돌아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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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18 16:12:06 수정 : 2022-04-18 1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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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제재로 은행 이용 불가… "가족에 송금 못해"
"정말 전쟁 중인가"… 매일 밤 붐비는 러시아 술집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한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는 옆으로 초대형 ‘Z’ 글자가 보인다. Z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뜻으로 쓰인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저는 무조건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러시아는 북한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요(Russia was turning into North Korea).”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충격에 터키로 출국한 어느 러시아 여성의 말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과 비교했다는 점이 못내 흥미롭다. 눈길을 끄는 건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고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났던 러시아인들이 속속 귀국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디언은 16일(현지시간) 다수 러시아인을 취재한 결과 등을 토대로 ‘개전 초기 러시아를 등졌던 이들이 마지못해 러시아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위에 소개한 러시아 여성이 대표적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는 영상물 제작에 몸담고 있는 이 여성은 가디언에 “전쟁 개시 후 공황상태에서 이스탄불로 떠났다”며 “국경이 닫힐지 모르니 떠날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또 친구들이 모두 떠나는 것을 보며 나 혼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고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최근 러시아로 돌아갔다. 미국 등 G7(주요 7개국)이 주도해 러시아에 가한 고강도 경제제재는 평범한 러시아 국민들의 경제적 삶마저 옥죄고 있다. 이 여성은 “당장 터키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도, 상점에서 신용카드를 쓸 수도 없었다”며 “모스크바에 사는 어머니한테 생활비를 송금하는 것 역시 불가능해졌다”고 이유를 털어놨다.

친(親)러시아 성향이 강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 시내에서 15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든 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베오그라드=AP연합뉴스

가디언에 따르면 일가족 전체가 러시아를 등지고 떠난 게 아니라면 혼자서 외국에 살긴 힘들었다. 고국에 남은 가족 및 지인들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하는데 서방 제재로 그게 불가능해지니 혼자 외국에 나가봐야 제대로 생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시 개전 직후 아르메니아로 출국했다는 한 러시아 남성은 아내와의 재결합을 위해 귀국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 남성은 “아내는 어디에도 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나는 아내 없이 혼자 러시아를 떠나든지 아니면 아내와 함께 러시아에서 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며 “결국 나는 아내와 함께 러시아에 머물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크렘믈궁이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특별군사작전’에 돌입한다고 발표한 직후 얼마나 많은 러시아인이 고국을 등지고 떠났는지에 대한 확실한 추정치는 없다. 지금도 러시아는 전쟁 대신 특별군사작전이란 표현을 쓰지만, 많은 남성들은 언제 군대에 징집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징병이 싫어 무작정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는 어느 러시아 남성은 강제동원은 사실이 아님을 확인한 뒤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는 가디언에 “솔직히 내가 우즈베키스탄이나 유럽의 다른 나라에 가서 뭘 할 수 있겠는가”라며 “나는 영어도 못 한다”고 귀국을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러시아군의 공세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거리에서 16일(현지시간) 한 노인이 플라스틱 물병을 유모차에 싣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 마리우폴=타스연합뉴스

그렇게 다시 고국 땅을 밟은 러시아인들은 전쟁에 대한 무관심에 또 한번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가 러시아군의 잔혹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또 우크라이나의 딱한 처지에 동정을 보내고 있는데 정작 러시아인들은 무신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한 러시아 여성은 “솔직히 길거리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할 줄 알았는데, 전쟁 발발 이전의 삶과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며 “모든 술집과 레스토랑은 여전히 매일 저녁 붐빈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 러시아에서만 무시되는 현실이 더 무섭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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