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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지구의 미래] 첫 단추 잘못 끼운 '석면 철거'…되레 극성 '낙인' 찍힌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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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4-11 21:09:51 수정 : 2018-04-11 2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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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석면문제 4개월… 심각한 학내 갈등으로 비화

지난해 12월이었습니다. 아이 학교에서 겨울방학 기간 석면 철거 공사를 진행한다는 알림이 있었습니다. 방학이면 으레 하는 시설물 공사인가보다 했습니다. 석면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설마 학교에서 아무렇게나 하겠나 싶었습니다.

방학 동안 아이는 친구들과 농구를 하기로 했다며 몇 번씩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한쪽에서는 청소 등 마무리가 채 끝나지 않았지만, 학생들의 체육관 출입을 막지는 않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한 학부모가 지난 여름방학 석면을 철거한 학교에서 석면 폐기물이 무더기 검출됐다는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뒤늦게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습니다. 한 시민단체가 지난해 8월 석면을 철거한 5개 학교를 모니터링했더니 51개 시료 중 45개(88%)에서 1급 발암물질인 백석면이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후 정부가 여름방학 석면 철거 공사를 한 1226개교를 전수조사했더니 410곳(33%)에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그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의식을 느낀 몇몇 학부모와 함께 우리 학교도 잔재물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절차가 진행되는 사이 저는 엄마들과 함께 교실을 청소했습니다. 계단 손잡이와 칠판 위, 교실 문틈에는 먼지가 수북했습니다. 석면 철거 후 청소를 했다면 이렇게까지 먼지가 많지 않을 텐데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얼마 뒤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석면 잔재물이 검출됐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고, 학교에 재청소를 요구했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가장 문제가 된 몇 군데의 시료를 채취해 전자현미경으로 검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예산도 부족하고 전자현미경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다고 했습니다.

석면이 날리는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사 일정을 미뤄서라도 석면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자현미경을 쓰느냐, 일반적인 편광현미경을 쓰느냐, 석면 잔재물 검출률이 0%여야 하는가, 일정 수준 이하면 괜찮은가를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시교육청도 ‘학교석면 안전대책 TF’를 꾸려 학부모와 관계자, 전문가를 불러 모았지만 뾰족한 해법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와 학부모 간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한 교사는 ‘자꾸 이러시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아이다, 어머님 일거수일투족을 학교에서 알고 있는데, 아이 학교생활이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학교 관계자와 옥신각신하다 ‘학교를 못 믿겠으면 전학 가시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다른 학교도 비슷했는지, 저처럼 앞장서신 분 중 서너 분의 자녀가 결국 전학을 갔다고 하더군요. 제 아이 학교에서도 한 분이 얼굴을 붉히며 싸운 곳에 아이를 맡기기 불안하다며 전학을 갔습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이제 이만하면 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는 어느 사이 ‘수업까지 방해하는 유난스런 엄마’가 돼있었습니다.

학교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저는 전학을 고민 중입니다. 저로 인해 ‘석면 엄마 아이’로 찍힌 아이가 원만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석면에서 아이들을 보호하자’는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걸까요.

※위 사례는 지난 겨울방학 석면을 제거한 학교 3곳의 학부모 3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신원 노출을 우려한 학부모 요청을 반영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겨울방학 기간 석면을 철거한 서울 A초등학교에서 용역회사 직원들이 창문을 열어놓은 채 석면 잔재물을 청소하고 있다.
학부모 제공
◆매뉴얼 없는 대책이 키운 불화

지난 겨울방학 석면을 제거한 학교는 전국 1227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부가 200여 곳을 임의로 골라 검사한 결과 43개교에서 잔재물이 나왔다. 시민단체 등이 발표한 10곳까지 더하면 53곳에 이른다.

정부는 지난 2월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대청소를 하고, 청소 후 학부모와 교육청·학교 관계자 및 석면 조사기관이 참여해 석면 잔재물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국민참여형 현장 감시(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상황은 정부가 발표한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유난 떠는 학부모’와 ‘대외 이미지만 걱정하는 학교’, ‘이 와중에 수업 진도 걱정하는 학부모’로 낙인찍으며 팽팽히 맞섰다. 엉터리 석면 청소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과 석면안전관리법 등에 따르면 석면을 철거하려면 해당 장소를 비닐로 밀폐하는 보양을 한 뒤 음압기를 걸어 작업장의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작업장 밖과 건물 밖, 폐기물 적치 장소에서는 공기질을 측정해 석면이 비산되는지 모니터링한다.

철거작업이 끝나면 작업장 내부를 청소하고, 바람을 일으켜 공기질을 측정한다. 이때 입자 모양을 확인하는 위상차현미경을 사용하는데, 1㏄ 공기 안에 석면처럼 긴 입자가 0.01개 이하면 깨끗하다고 보고 비닐을 걷어낸다. 육안으로 잔재물이 확인되면 시료를 채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철거 공사는 종료된다.

여기까지가 법이 정한 원칙이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석면이 규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철거됐다’는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번에 학교에서 잔재물이 나온 이유는 석면이 규정대로 철거되지 않아 학교 곳곳에 흩날리는 바람에 벌어졌다. 그런데 교육부를 비롯한 석면 관련 당국은 ‘비산 석면은 없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매뉴얼만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위상차현미경이든 편광현미경이든 철거 공사가 완벽히(제대로) 이뤄진 상황에서 의미가 있는 방법”이라며 “전자현미경도 (시민단체 방법대로) 휴지로 닦아낸 시료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면적에 쌓인 먼지를 분석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결국 석면 철거라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보니 학부모는 불안하고, 학교는 학부모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해 심각한 학내 갈등으로 비화한 것이다. 

◆“위험 잘 알려진 석면 관리도 못 한다면…”

한 학교 교장은 “서로 상처받고 엉망이 됐다”며 “지금처럼 석면 후처리 문제를 일선 학교에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가 명확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편광현미경이나 위상차현미경처럼 석면 검사에 쓰이는 일반현미경은 시료 1건당 4만∼5만원이 들지만, 전자현미경은 건당 15만∼20만원이 든다”며 “모든 시료를 전자현미경으로 검사하려면 예산의 한계도 있고, 전자현미경에서 검출된 석면을 제거하려면 헤파 필터가 장착된 청소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장비도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의 석면 TF는 지난 6일 제5차 회의를 끝으로 해산됐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마지막 논의내용 파일에는 △2027년까지 석면 완전제거를 목표(정부 방침)로 계획을 수립해 과도한 물량으로 부실공사 발생 우려 △학교 현장에 적합한 매뉴얼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한 조치로 △먼지시료를 포함한 잔재물 조사로 불검출을 확인한 후 다음 공정 진행할 것 △공기질 측정시료 일부(10∼20%)를 전자현미경으로 분석 △그에 따른 추가 예산 지원 등을 제안하고 있다. 다만, TF 논의 결과일 뿐이어서 실제 도입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정부도 육안으로 잔재물이 보이지 않더라도 바람을 일으켜 공기질을 다시 한번 측정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마지막 TF 회의에 참석했던 백 교수는 석면 문제를 지적한 학부모들이 극성으로 몰린 상황에 대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 것 같다”며 씁쓸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석면은 그동안 가장 많이 연구된 발암물질이고, 위험성과 대안도 가장 많이 알려져있다”며 “이런 석면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다른 발암물질 관리는 더욱 허술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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