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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컴퓨터 아바타로 추락할 것인가

입력 : 2017-09-16 03:00:00 수정 : 2017-09-15 21: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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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 대결’ 승패로 보는 세상 / 인공지능에 과대한 공포·기대로 본질 흐려 / 어떤 목표 세우고 해석하는가는 인간의 몫
이시다 히데타카 지음/윤대석 옮김/사회평론아카데미/1만7000원
디지털 미디어의 이해/이시다 히데타카 지음/윤대석 옮김/사회평론아카데미/1만7000원


오늘날 인터넷 세상은 미국의 군사기술인 ‘아파넷’이 1989년 ‘인터넷’이란 말로 민간 개방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미군이 사용해 온 것은 대형 컴퓨터, 즉 슈퍼컴퓨터(IBM)였다. 흥미로운 것은 민간 개방이 캘리포니아의 저항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미 대학생이 주도한 저항운동으로 ‘컴퓨터 립(Computer Lib)’이 있었다. 컴퓨터를 해방하라는 것인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등 초기 PC 1세대들은 거기서 출발했다. 이들은 “컴퓨터를 군인의 손에서 해방하라”며 소형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듯 초기 컴퓨터 세대는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저항문화 속에서 탄생했다. 이들은 점차 미국식 자본주의에 흡수되면서 정보자본주의의 주역으로 변모한다. 1995년 ‘윈도95’ 발매로 PC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현재의 인터넷 세계가 형성되었다.

마치 1차 대전 직후 군사용 무선기술이 라디오 시대를 열었고, 이어 TV 시대를 열었던 역사를 반복한 셈이다.

20세기 하반기를 풍미한 것은 일본의 아날로그 자본주의였다. 그러나 소니와 파나소닉의 아날로그 미디어 기술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등이 이끄는 미국 정보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있다. 소니, 샤프의 아날로그 정밀 기기는 애플이나 삼성의 부품으로 추락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승자가 디지털 기업의 하청 기업으로 전락한 셈이다.

도쿄대학 석좌교수로 ‘도쿄대 디지털휴머니티즈’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저자 이시다 히데타카는 “인공지능에 대한 과다한 공포나 과대 포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평론 제공
도쿄대 석좌교수로 세계적인 디지털미디어 전문가인 저자는 “지금이 바로 그러한 역사적 전환 단계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미디어 인간은 ‘자기 자신의 재귀화를 위한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자신의 가치관, 사고방식, 주의력의 배분을 인식하고, 스스로 정보생활을 디자인할 수 있는 노하우와 환경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인간은 디지털 미디어에서 ‘개인이 되는 과정’을 디자인하는 능력을 연마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여기서 ‘정신 생태학’이 절실하다.

저자는 “지금처럼 인간이 컴퓨터, 즉 디지털 원리에 맞춰 사고하고 생활한다면, 인간은 컴퓨터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은 점점 컴퓨터와 비슷한 존재가 될 것이고, 컴퓨터의 아바타가 될 것이다. 이는 컴퓨터의 탓이 아니라 컴퓨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탓이 크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결한 것처럼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겼다는 식으로 인공지능을 표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빅데이터나, 고난도의 연산처리 기술, 딥러닝·머신러닝 등으로 인공지능이 가능해졌지만, 이를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표상하기 때문에 과대한 공포와 과대한 기대가 공존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인공지능은 새로운 해석이 불가능하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떤 목표를 세우고 무엇을 해명할 것인가를 설정하지 않으면 컴퓨터는 해석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연구자가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인공지능에 트위터를 접속했더니, 인종주의적 성차별적 말들이 마구 튀어나왔다고 한다. 즉, 인공지능에는 ‘타자 감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윤리의식도 없다. 이것 역시 인공지능 탓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잘못 이해한 인간의 탓이 크다. 인공지능에게 윤리의식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금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거대한 뇌로 변해가고 있고 그 속에서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달라지는 환경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며, 바로 교육의 문제”라고 풀이했다.

저자는 “인공지능은 한 인간의 뇌보다 1조 배나 용량이 큰 뇌이며 인간의 좋은 점, 나쁜 점을 모두 갖고 있다”면서 “이것을 선별하여 어떻게 세계를 설계하는가는 인간의 몫이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역할”이라고 진단했다.

저자는 “지금까지 학교는 희소한 정보를 얻기 위한 기관이었다”면서 “그러나 학교 밖 환경은 범람하는 정보 가운데 유익한 것을 선별하여 필요 없는 것을 버려야 하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학교는 정보 과잉에 대응하는 교육 장소로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지금처럼 방치해두면 주의력을 둘러싼 환경에 아이들이 휘말려 들어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신생태학을 위한 공적 기관이 만들어져, 미디어 재귀적인 가치를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 ‘미디어 재귀적인 인간’, 즉 스스로 의식적으로 주의력의 배분을 조직할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전 세계 ‘디지털 휴머니티즈(digital humanities)’라는 인문학 쇄신 운동을 이끌고 있다. 현재 도쿄대 디지털 휴머니티즈 대학원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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