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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광장] ‘수사권 갈등’ 솔로몬의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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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21 00:27:12 수정 : 2011-10-21 00: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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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넘게 끈 ‘밥그릇 싸움’
검·경아닌 국민위한 합의를
“모든 지방청장과 경찰서장은 수사권 조정문제에 자신의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임해라.”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5월26일 조현오 경찰청장이 전국 지방청장 화상회의에서 당부한 말이다. 그러자, 다음날 박용석 대검찰청 차장은 “수사권 조정을 전쟁하듯 해야 합니까. 조직을 위해 ‘직(職)’을 건다는 건 조폭들이나 하는 겁니다”라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의 냉소는 한달 만에 검찰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수사권 조정 세부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절충안을 통과시키자 검사들이 줄사표를 던졌다. 실무 책임자였던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실무팀 간부들이 사표를 냈다. 김홍일 중앙수사부장 등 검사장 4명도 사의를 표명했다. 결국 한달여 만에 김준규 검찰총장이 총대를 메고 옷을 벗었다.

김기동 사회부 차장
일단락된 듯했던 수사권 조정 논란이 또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얼마 전 법무부가 내사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대통령령 초안을 총리실에 제출하자 경찰이 발끈했다. 곧바로 경찰은 수사 대상이 전·현직 검사이거나 검찰 직원일 경우 수사지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초안을 별도로 냈다. 경찰집무규칙을 ‘법무부령’으로 하느냐, ‘행정안전부령’으로 하느냐를 놓고도 양측이 으르렁대고 있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해묵은 논쟁이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부터 불씨를 안고 반세기 넘게 지탱해왔다. 현행 형사법 절차는 수사, 공소제기, 공판, 집행으로 나뉜다. ‘수사권’은 이 가운데 공소제기 전 수사절차를 의미한다. 현행법상 검찰은 수사권은 물론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을 모두 갖고 있는 최고의 수사 주체다. 게다가 국가 소추기관으로 공소제기와 공소유지 등 소추에 관한 모든 것을 집행 지휘한다. 우리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검찰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검찰은 소추권, 경찰은 수사권을 갖는 ‘균형과 견제’가 필요한 대목이다. 실제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당시 국회 속기록에도 ‘언젠가는 경찰은 수사, 검찰은 기소로 분리되어야 되겠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는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2003년 참여정부 시절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수사권 조정 문제를 활발히 논의하자는 취지에서 수사권 조정을 위한 검·경 조정협의체가 구성됐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수사권 조정 문제가 9부 능선을 넘은 것이다.

도도한 시대적 흐름은 더 이상의 힘겨루기를 원치 않는다.

대한민국의 민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상대를 비난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다.

어찌보면 국민들에게 수사권의 향방이나,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지, 검찰의 지휘를 받아 경찰이 수사를 진행했는지는 부차적 문제다.

기본적인 ‘원칙’을 간과하고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수사권 조정의 취지는 권력기관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제도적으로 막아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데 있다. 권력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시대는 끝났다. 국민을 불러 호통치고 윽박질러 교도소에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어서는 안 된다. 과거 개발독재시절 수사 과정에서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경험한 국민들이 검찰·경찰 얘기만 나오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재 흘러가는 모양새는 국민의 인권과는 무관하게 권한 다툼이나 영역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는 듯하다. 원칙만 명확하다면 경찰청장이 ‘직’을 걸라고 다그치거나, 검찰총장이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일선 검사와 경찰이 모여 세를 과시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탈무드에는 솔로몬왕의 유명한 재판 이야기가 나온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했다. 왕은 아이를 나누어 각각 반씩 가져가라고 결정을 내렸다. 한 여인이 아이를 포기할 테니 아이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지혜로운 왕은 아이를 포기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라고 판결했다.

어느 한쪽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고, 국민들을 위한 조정안이 나올 수 있도록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양쪽 다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김기동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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