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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이책만은꼭] 쓰레기는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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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2-20 23:46:11 수정 : 2023-02-20 23:46:11
장윤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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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지 쌓인 폐기물, 물·흙 오염 등 재앙 초래
물질도 ‘활력’ 인정… 책임과 공생의 관계 맺길

월요일마다 분리배출을 한다. 플랫폼 경제는 쓰레기 경제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배달된 물건의 포장재가 누적되어 한 아름을 넘는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를 오르내리면서 몇 차례 분리한 쓰레기를 내다 놓고, 폐기할 것들을 버리다 보면,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두 해 후인 2025년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사용 연한이 끝난다. 그사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대체 부지가 없는 서울은 쓰레기 지옥으로 변한다. 기한을 연장해도 몇 해에 불과하다. 게다가 매립이 끝도 아니다. 오염 등 다른 사태의 시작일 뿐이다. 우리에겐 ‘쓰레기 제로’ 같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억제할 삶의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세상 보는 관점부터 변해야 한다.

‘생동하는 물질’(현실문화연구 펴냄)에서 제인 베넷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쓰레기 매립지가 폐기물을 쌓아둔 정태적 공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매립지는 노동과 기술, 사물과 박테리아 등 수많은 행위소가 얽힌 채 활력 있게 움직이는 집합체다. 매립지는 인간 의도와 상관없이 역동하면서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은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메탄을 생성하고, 침출수를 배출해 물과 흙을 오염시킨다. 인간 통제 바깥에 있는 매립지의 힘을 무시한 채 무작정 쓰레기를 쌓으면, 재앙을 대가로 치른다.

베넷은 묻는다. “매립지에 쌓인 것이 잡동사니, 폐물, 쓰레기, 재활용품이 아니라 활력 넘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물질더미라면, 우리 소비 양식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중독되어, 대량 쓰레기를 남기는 약탈적 행위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베넷은 자연의 힘을 무시하는 태도 이면에 근대 서구의 세계관이 있다고 말한다. 근대인은 인간만을 적극적·능동적 존재로 여기고, 동물, 식물, 바위, 기계 같은 존재는 비의지적·수동적 대상으로 생각한다. 인간을 다른 존재와 분리된 예외 존재로 인식하는 태도는 인간 욕구를 우선함으로써 자연 지배와 파괴 행위를 부른다.

위계는 인간 사회에도 작동한다. 인간도 열등 존재, 개돼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 착취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전 지구적 기후 재앙과 사회 불평등이다. 인간 예외주의에 맞서 베넷은 세상 모든 존재의 연결성과 의존성을 인식하는 전체론적 세계관을 제안한다.

베넷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는 능동의 힘을 품고 있다. 베넷은 이를 활력이라고 부른다. 활력은 인간만의 역능이 아니다. 동식물은 물론이고 사물들도 극적이고 미묘한 효과를 생산하는 활력을 품고 있다.

인간만이 결정하고 행동하는 유일 주체는 아니다. 인간만큼이나 비인간 존재도 다른 존재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과 동등하게 상호작용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수평적이다. 이런 점을 인식할 때, 인간과 세계는 지배와 통제가 아니라 상호 돌봄과 책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에는 우리를 바꾸고 세상을 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존재의 힘을 존중할 때, 더 지속 가능하고 더 윤리적인 공생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활력 넘치는 물질과의 만남이 인간 지배라는 환상을 벌하여 바로잡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장윤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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