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과학기술인들을 신명 나게 하라

관련이슈 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5-07-28 22:50:18 수정 : 2025-07-28 22:50:16

인쇄 메일 url 공유 - +

과학가치 인정하고 연구기반 마련 우선
당장 성과 없어도 인내하며 기다려줘야

“세종 같은 대통령이 나오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노벨 과학상 수상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말인가요?”

지난주 대전의 청년들에게 세종의 과학기술 리더십을 강의할 때 나온 질문이다. 세종이 다스리던 15세기 전반, 조선이 이룩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당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라는 이야기에 한 청년이 물었다. “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나는 일본 도쿄대 이토 준타로 교수 등이 편찬한 ‘과학사 기술사 사전’의 기록을 보여주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이 책에 따르면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조선의 과학기술 성과는 21건으로(K21), 같은 시기 중국의 성과(4건)는 물론 유럽과 아랍 등 여러 지역을 합한 수치(19건)보다도 많다. 만약 15세기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조선이 과학기술 분야 수상의 47%를 차지했을 것이다. 이른바 ‘K21 신화’라 불릴 만한 시대였다. 그 때문인지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 성과를 다룬 연구는 적지 않다. 홍이섭 교수의 ‘한국 과학사 통사’(1944)를 시작으로 천문학, 인쇄술, 지리학, 농업기술, 화약 및 무기, 의약학 등 여러 분야에서 수십 편의 논저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연구자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 탁월한 과학기술 성취는 바로 ‘과학을 깊이 이해한’ 세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언급이다. 하지만 이는 세종의 위대함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미래가 어둡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청년들과의 대화처럼 최고 통치자가 천문·역산·지리·산학까지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그 시대와 같은 창조적 도약은 불가능하다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과학기술은 어떻게 도약해야 할까? 1431년 7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세종 재위 13년, 당시 조선은 천문역법 사업, 곧 천체의 운행을 토대로 한 해의 주기적 시기를 정확히 산출하는 작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1420년부터 국가 차원의 노력이 시작됐지만 10여 년이 지난 1430년까지도 진척이 없었다. 젊은 수학 인재를 중국에 유학 보내고, 과학 행정에 능한 정초를 천문역법 사업에 투입했다. 집현전의 김빈도 이 일에 참여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기대만큼 진척되지 않자, 세종은 사업의 장기화를 우려하여 1431년(세종 13년)에 마침내 정인지를 새롭게 합류시켰다.

놀랍게도 이듬해인 1432년 10월, 역법 계산의 정밀도가 크게 향상되었다는 소식에 세종은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최고 인재들이 대거 참여해 큰 진전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세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금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고유의 역법 완성에 힘쓰라. 후대로 하여금 그대들이 역사적인 업적을 이뤘음을 알게 하라”고 당부했다. 경회루 근처에 과학기기를 설치해 이론과 실제를 점검하고, 이슬람의 회회력까지 비교해 세계 최고 수준 역법을 만들게 했다. 12년 뒤인 1444년 ‘칠정산 내편’이 탄생했다. 이는 K21 신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성과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 세종은 성과가 보이지 않아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학기술자들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왕 자신이 과학기술에 해박했는지는 본질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가치를 인식하고 인재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이끄는 리더십이었다. 그는 연구자들을 찾아 그들의 연구 가치를 인정했고 지식을 축적해 후속 연구가 계속되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결정적 순간에는 최고 인재를 투입해 혁신을 이루도록 했다.

기후변화센터 유영숙 이사장에 따르면, “과학기술자들은 인정받고 자긍심을 느낄 때,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을 잘 아는’ 대통령이 아니라, 과학기술 인재들이 신명 나게 일하도록 춤추게 할 줄 아는 지도자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있지 유나 ‘황금 골반 뽐내’
  • 있지 유나 ‘황금 골반 뽐내’
  • 채수빈 '완벽한 미모'
  • 이은지 ‘밥값은 해야지!’
  • 차주영 '완벽한 비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