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호원칼럼] “편협하고 교만한 군주”

관련이슈 강호원 칼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0-09-21 22:57:04 수정 : 2020-09-21 22:57:0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왕이 편협하면 어리석어지고 교만하면 나라가 피폐한다”
‘秋 아들 특혜 의혹’ 외면한 채 37차례나 공정 외친 文대통령

경관(京觀). 고구려가 수나라 군사의 뼈를 쌓아 요동벌에 세운 탑이다. 침략자의 말로를 경고하는 탑이다. 그것을 허문 것은 당 태종 이세민이다. 그로부터 14년, 이세민은 고구려를 침입했다.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안시성 싸움에서 패해 줄행랑을 치고 4년 뒤 숨졌다. 그는 어리석은 황제였을까. 그렇지 않다. 뛰어났다. 그의 시대는 ‘정관의 치’로 칭송받는다. 왜 그런지는 ‘정관정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후 제왕의 교본이 된 정관정요, 그 수미를 관통하는 화두는 무엇일까.

“군주가 영명한 것은 널리 듣기 때문이며 어리석은 것은 편협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쇠하고 피폐해지는 것은 천하를 얻은 뒤 마음이 교만하고 음란해지기 때문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위징의 말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에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편협하고 교만한 권력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민심의 역린을 건드려 비참한 운명을 맞지 않았던가.

지금은? 위징의 경계를 ‘달나라 언어’쯤으로 여긴다. 권력을 쥔 자들은 귀를 틀어막은 채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남 탓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법도 없으며, 비리를 감추기 위해 수사기관마저 허수아비로 만든다. 조국 사태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비롯해 여름날 죽순처럼 자라나는 권력형 비리 의혹들, 국민경제를 도탄에 빠뜨리는 경제·부동산 실정(失政)…. 아무리 원성이 들끓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대통령부터 그렇다.

공정과 정의? ‘청년의 날’을 만들어 헛말을 또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공정’을 37차례나 말했다. “공정은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며. “어디 딴 세상에 사시는 듯하다.” 진중권 교수의 관전평이다. 그만 그런 생각을 할까.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를 둘러싼 의혹만 봐도 그렇다. 공정의 가치는 바닥을 뒹군다. 양파 껍질 벗기듯 드러나는 사건의 진상. 당직사병의 증언도, 추 장관 보좌관의 전화도, 상급부대 장교의 방문도, 평범한 병사는 감히 엄두내지 못할 야릇한 휴가 연장도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추 장관의 말, “소설 쓰시네.” 그 말은 거짓으로 판명났다. 당직사병을 두고 추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중대 소속으로… ‘이웃집 아저씨’라고 한다”고. ‘이웃집 아저씨라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카투사로 복무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안다. ‘당직사병’은 적은 수의 대대 카투사를 관리하기 위해 산하 중대의 고참 병사들이 돌아가며 그날 행정사무를 책임지는 직무라는 것을. ‘허황한 말’로 사실을 덮고자 하는 건가.

더욱 기가 찬 것은 여당과 정부의 행태다. 너도나도 ‘추 장관·서 일병 구하기’에 나섰다. 여당 원내대표, “카카오톡으로도 휴가 연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조소와 비난이 폭발한다. 일선 지휘관들조차 “어떤 미친 지휘관이 카톡으로 휴가를 연장해 주느냐”고 한다. 추 장관 아들에 대해 “나라 위해 몸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을 몸소 실천했다”는 여당 원내대변인의 말에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썩은 가치’의 전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또 어떨까. 추 장관과 검찰의 아들 수사를 두고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했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통해 수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사병에 대해선 “공익신고자 보호 대상이 아니다”라며 방치한다. 그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가. 소가 웃을 일이다. 전현희 전 의원은 국민의 권익을 지켜야 할 위원장 자리에 앉아 ‘추미애 사수’에 숟가락을 얹은 걸까. 이제 국민권익위 명패에서 ‘국민’을 떼야 한다.

이런 사태는 왜 벌어질까. 이유는 한 가지다. “천하를 얻은 뒤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추미애 사태’에 입을 다문 채 공정이라는 말을 수십 번씩 반복할 까닭이 없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걸까. 편협하고 교만하고 방자한 정치. 결과는 무엇일까. 정관정요에는 역이기의 말도 있다. “군주는 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다.” 화난 민심은 어디로 향할까.

 

강호원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