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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누구를 위한 강사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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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03 00:07:23 수정 : 2019-09-03 0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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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후 해고된 강사 7800여명 / 처우개선보다 심각한 문제 야기 / 기초·순수학문 매진할 수 있게 / 중·장기적 인력 수급정책 절실

‘강사법’ 시행 후 처음으로 맞는 대학가의 분위기는 두루 어수선하다.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강사법 시행 후 실제 해고된 강사가 7800여명에 이르고 폐강된 과목으로 인해 학생들의 수업권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계열별로 해고된 전업 강사 수는 인문사회 분야가 1900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예체능계, 자연과학, 공학계열 순이라는 발표도 나왔다.

하지만 교육부의 보도는 현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여성 강사의 타격이 더욱 컸을 것으로 짐작되는 상황에서 성(性)별 데이터가 없었음은 유감이고, 강사법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운 다종다양의 실질적 시간강사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함구하고 있음도 유감이다. 시간강사 현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실태 파악이 이루어져야 이를 기반으로 현실적합성이 높은 효율적 정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국가가 정책을 입안하면 국민은 대책을 마련한다’는 유머가 회자되고 있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는 안 될 것 같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강사법에 대해서는 학생들 입장에서도 불만과 불안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택가능한 과목 수가 줄어든 것 자체도 불만이지만, 해당 과목의 강사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수강신청은 했지만 개강 이후 그 과목이 폐강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크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졸업을 앞둔 고학년의 경우는 전공학점을 못 채움으로써 졸업이 지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데 강사법의 여파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가장 먼저 감지된 것은 이번 학기 들어 부쩍 휴학원서에 도장받기를 희망하는 대학원생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내 대학원의 위기 징후는 비교적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왔다. 실제로 일반대학원의 진학률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 왔고, 등록률도 대학별로 차이는 있겠으나 대체로 재정 위기를 걱정할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강사법이 국내 대학원, 그중에서도 특별히 순수학문 분야의 위기를 가속화할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여파가 당혹스러울 만큼 빠르게 나타나고 있어 내심 놀랍다. 연구 능력이 출중했던 제자가 시간강사 자리를 포기하고 공공기관 계약직 자리를 선택하는 것을 보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실감하기도 했다. 강사법의 본래 의도는 불안정한 시간강사 지위에 안정성을 더하고, 장기적으로는 학문 후속세대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겠지만 현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유학 시절, 당시 미국 대학의 시간강사가 얼마나 열악한 지위에 있었는가를 풍자하던 대학 신문의 두어 컷짜리 만화가 떠오른다. 학생들이 금요일 밤 신나는 파티를 즐기던 와중에 피자 배달부가 도착해서 벨을 누른다. 학생들이 뛰어나가 문을 열고 보니 피자 배달부는 자신들이 수강하는 과목의 시간강사 아니던가. “앗! 교수님”을 외치며 엉거주춤 서 있던 학생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인상적이었던 만화였다.

그즈음 이미 미국에선 대학생들이 법학, 의학, 경영 등의 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높은 연봉이 보장된 법조인, 의사, 경영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덕분인가, 순수학문 중심의 일반대학원 위상은 전문대학원과 비교해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고, 농담 반 진담 반 ‘3D 실험실’이란 오명이 붙은 곳은 중국 및 인도를 위시한 제3세계 유학생들로 넘쳐났다. 이미 우리네 대학원의 현실도 30여년 전의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니, 투잡을 뛰어야만 했던 만화 속 시간강사의 애환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일반대학원 및 순수학문의 위기는 간단히 해결가능한 문제가 아님은 물론이다. 소위 SKY(서울·고려·연세)대를 위시한 명문대생의 3분의 1이 ‘공시생’(공무원 및 공사 취업을 준비한다는 의미)이요, 전문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이들 다수가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기초 및 순수학문 분야의 전문인력 풀이 희소해지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측가능한 일이다.

선진국일수록 기초 및 순수학문 분야가 발달돼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온 국가들의 공통점도 다시금 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미래를 주도하게 될 과학 기술 분야의 브레인이 없어 선진국 인재와 기술에 의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팔다리 역할을 해 줄 인력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는 우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강사법의 여파를 만만히 인식할 경우 장기적으로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강사법이 원래 의도했던바 시간강사의 지위 안정화 못지않게,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차제에 강사법의 조기 정착을 위한 단기 정책 못지않게, 강사법이 던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 정책 수립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관건은 한국사회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기반으로 중·장기적 인력 수급정책을 수립하되, 이 과정에서 반드시 기초 및 순수학문 분야에 뛰어든 인재들이 소신껏 자신의 미래를 걸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특단의 지원 정책이 요구된다 하겠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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