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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방학이 있는 삶’을 되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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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2 21:14:54 수정 : 2019-07-22 21: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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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마음껏 뛰노는 시간 누려 / 요즘 학생들 학원·선행학습 전념 / 주입식교육은 미래인재 못 키워 / 골목서 놀며 ‘거리의 지혜’ 배워야

초중고등학교 대부분이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학교 파하자마자 가방은 마루에 던져 놓고 동네 친구와 골목에서 해질 녘까지 시간가는 줄 모른 채 놀았던 세대에겐 방학이란 문자 그대로 학교에 가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을 의미했다.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가 시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과수원 오두막에서 한가하게 낮잠도 자며, 갓 딴 복숭아를 입안 가득 물어보는 재미를 맛보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요즘 초·중·고등학생에게 방학이란 학교 가는 대신 학원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 내신관리를 위해 선행학습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기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방학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은 대학 문을 나서면서 끝나는 우리네 인생을 놓고 볼 때 ‘참 좋은 시절’임이 분명한 청소년에게 방학의 여유로움과 기쁨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건 아무래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최근 저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는 19번째 주제로 교육이 등장한다. 교육과 관련해서도 그만의 특허라 해도 좋을 흥미진진하면서도 통찰력 가득한 주장이 펼쳐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앞으로 30년 후인 2050년, 지금의 중고등학생이 40대가 돼 사회의 주역으로서 한창 활동할 때가 되는 시기. 그때를 위해 어떤 역량을 키워주어야 할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 조각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그의 주장을 누군들 부인할 수 있겠는지.

하지만 그는 오늘날 대다수 학교에서는 “미분방정식을 풀거나, C++로 코드를 짜거나, 시험관의 화학물을 판독하거나, 중국어회화 같은 기량을 전수하는 데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인다(…) 정작 2050년에는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소프트웨어 코딩을 더 잘한다거나, 새로운 구글앱 덕분에 ‘니 하오’만 알아도 표준 중국어와 광둥어로 나무랄 데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래 세대가 키워야 할 능력은 암기력이나 기억력은 아님이 분명한데도, 주옥같은 방학을 이용해서까지 우리가 미래의 주역들에게 어떤 능력을 키워주고 있는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라리의 결론인즉 “학교는 기술적 기량에 치우진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일 것이다. 2050년의 세계에 발맞춰 살아가려면 새로운 생각과 상품을 발명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이다.

향후 학교의 교육내용은 4C, 즉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 그리고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로 전환해야 한다는 교육 전문가들의 주장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들 4C 능력이야말로 21세기 교실이나 학원 강의실이 아니라 20세기 동네 골목에서 언니 오빠 친구와 뛰어노는 동안 자연스럽게 키워지지 않았던가. 학교에서는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기량을 일명 ‘거리의 지혜(street wisdom)’를 통해 배웠다는 고백을 우리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들어 왔다.

그러고 보니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 현실에 조금씩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 포착되기도 한다. 세 자녀에게 골목을 체험하도록 해주고 싶어 강남의 아파트숲을 떠나 강북의 골목 있는 동네로 이사한 엄마도 있었고, 두 딸에게 시골 초등학교 생활을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어 대도시 생활을 접고 섭골길까지 내려왔노라는 엄마도 만났다. 두 엄마 모두 아이들이 행복해해서 정말 다행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 만났던 중년의 아빠는 두 아들과 여름휴가철이면 계곡을 찾아 캠핑을 즐긴다고 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아빠의 기억과 추억을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들 녀석이 계곡 캠핑을 더 간절히 기다린다고 했다.

‘끊임없는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라는 21세기를 헤쳐가야 할 우리 자녀 세대를 위해 진정한 의미의 ‘방학이 있는 삶’을 되돌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 온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재발명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하니, 방학을 이용해서 ‘과연 나는 누구인지’ 진지하게 물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 AI가 우리의 경쟁상대로 부상 중이라 하니 ‘과연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100세 인생을 지나가야 할 것인지’ 마음껏 고민하면서 자신의 잠재적 역량을 폭넓게 탐색할 수 있는 시간도 줬으면 좋겠다.

당장 눈앞에 닥친 입시전쟁 앞에서 비현실적인 소리 한다고 비난하고 배부른 소리 한다고 외면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지금 우리에겐 (미래를 준비하기에) 시간이 없다”는 하라리의 목소리가 내겐 더욱 절실하고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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