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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빌딩 통풍구입니다. 깊이 10미터 이상으로 추락위험이 있으니 경계선을 넘지 마시오.’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가 일어난 가운데 19일 오후 덕수궁 앞 지하철 환기구 주변에 전날과 달리 접근금지 문구와 함께 하얀 줄이 둘러쳐져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왼쪽) 하지만 서울 경복궁역 인근 인도의 공간이 부족해 시민들이 깊이 5m의 환기구 위를 걷고 있다.
이재문 기자
유동인구가 많은 주말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의 한 고층빌딩 옆 환풍구 옆 바닥에는 ‘위험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경고 문구가 버젓이 써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행자들은 거리낌없이 환풍구를 밟고 지나갔고 흡연자들은 환풍구 위에서 담배를 피웠다. 일부 시민들은 성남 환풍구 추락사고를 언급하며 친구들을 환풍구로 밀어넣는 듯 장난을 치기도 했다. 환풍구 위에서 담배를 피우던 박모(26)씨는 “(환풍구 추락) 사고를 보고 다시는 올라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올라가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올라갔다”며 “환풍구 위는 담배를 피운 뒤 꽁초를 버리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추락사고로 인명 피해를 낸 ‘위험한 환풍구’는 도처에 존재한다. 건축물 환풍구는 흡기구·배기구에 따라 설계 규정이 제각각인 데다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한 규정은 없다. 서울시 등 대도시에 많은 지하철 환풍구도 명확한 설계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경기도·성남시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27명이 추락해 16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입은 환풍구는 공기를 빨아들이는 흡기구였다. 공기를 내뱉는 배기구는 건축물의 제반시설(환풍구, 주차타워 리프트 등)의 설치 규정을 명시한 ‘건축물의 설비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2m 이상’ 높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견고하게 설치해야 하지만 흡기구에 대한 규정은 전무하다. 배기구에 대한 규정도 보행자의 건강을 고려해 높게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았을 뿐, 보행자가 올라갈 위험에 대한 대비책은 담고 있지 않다. 보행자가 흡기구 위에 올라갈 경우를 대비해 주의문구를 표시하거나 안전 펜스를 설치해야 하는 규정은 없다.

서울시 등 대도시에 다수 분포하고 깊이가 최대 24m에 달하는 지하철 환풍구는 배기구와 흡기구 모두에 대한 설치 규정이 없다. 지하철은 건축물이 아닌 ‘구축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건축물 제반시설의 설치 규정을 따르지 않는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환풍구를 ‘타워형’과 ‘바닥형’으로 나눠, 타워형은 보도의 넓이가 넓은 곳에 1.5m 이상의 높이로 짓고, 바닥형은 좁은 곳에 30㎝ 이상의 높이로 설치하고 있다. 바닥형은 펜스를 설치하거나 보행을 금지하면 설치의도에 어긋난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제곱미터)당 5명이 지나가도 안전에 지장이 없도록 설치하고 있고, 매달 두 번씩 점검하고 있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음주부터는 특별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세대 조원철 명예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미국 뉴욕 맨해튼은 지상에서부터 5m 이상으로 환기구를 설치하고 있다”며 “환풍구를 더 높이는 방안과 구멍을 건물이나 도로쪽을 바라보도록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환풍구 안전점검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환풍구 보완 방안을 자치단체가 조례로 지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호·권구성·최형창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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