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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두 딸 만난 93세 아버지 “통일될 때까지 죽지 말자”

입력 : 2014-02-20 20:07:53 수정 : 2014-02-21 02: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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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4개월 만의 상봉 행사 첫날… 60년 그리움 달랬다 금강산의 폭설을 뚫고 만난 남북 이산가족은 60여년 만에 뜨겁게 포옹하며 혈육의 정을 나눴다. 저마다 가슴 깊이 묻어뒀던 애달픈 사연들이 터져나오면서 20일 이산가족 상봉 단체행사가 진행된 금강산호텔은 울음바다가 됐다. 이산가족들도 울고 금강산도 울었다. 전쟁통에 헤어졌다 어렵사리 만난 부모·자식은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며 서로 얼굴을 만져보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수액주사 바늘을 꽂은 채 응급차에 실려 금강산에 도착한 김섬경(91)씨와 “아프지만 죽어도 가야 한다”고 했던 홍신자(84·여)씨는 이동식 침대에 누운 상태로 북녘의 피붙이들과 재회했다.

◆60년 만에 재회한 부부, 말 없이 바라보기만

60여년 만에 재회한 ‘부부’는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북쪽 가족들을 만나면 안아주고 싶다”고 했던 김영환(90)씨는 연로한 탓에 젊은 시절의 아내 김명옥(87)씨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상봉에 동행한 남쪽의 아들 세진(57)씨가 “옛날 사진 있으면 알아보시겠느냐”고 물었지만 부부는 말이 없었다. 아내와 헤어질 때 다섯 살이던 북쪽의 아들 대성씨는 65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부부는 64년 만에 만났지만 청력을 잃어 서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유일한 ‘부부 상봉’이다.

6·25전쟁 당시 평안남도에서 살던 두 사람은 인민군을 피해 잠시 헤어져 있겠다는 게 ‘생이별’로 이어졌다. 충청도로 내려온 남편은 군에 입대했고 남한에서 다시 결혼해 4남1녀를 뒀다. 김명옥씨는 김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함께 북녘 땅에서 수절한 채 살았다. 김영환씨는 평생 북녘 땅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간직한 채 살아야 했다.

조카 큰절 받는 北 삼촌 남측 상봉단 박운형(93)씨의 아들인 박철(61)씨가 20일 금강산호텔에서 북한에 살고 있는 삼촌 박운화(79)씨에게 큰 절을 올리고 있다. 박운형씨는 1951년 1·4후퇴 때 남쪽으로 피란왔다가 동생들과 헤어졌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60년 만에 만난 딸, 가슴으로 느낀 치매 어머니


이영실(88·여)씨는 전쟁통에 두 딸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남한으로 잠시 피란 왔다가 휴전이 되는 바람에 두 딸과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이날 상봉 행사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둘째 딸 동명숙(67)씨를 만났는데도 치매에 걸린 이씨는 알아보지 못했다. 저녁 만찬자리에서 딸 명숙씨는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며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으나 어머니는 “예 그래요?”라며 딴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고, 딸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저녁을 먹었다. 이영실씨는 북한에 두고온 딸들 생각에 명절 때면 몰래 숨어 울곤 했고, 남편은 평생을 애통해하다 4년 전 세상을 떴다.

부친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누나와 만난 김명복(66)씨는 “나 혼자만 편하게 살아서 미안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1951년 1·4 후퇴 때 김씨의 아버지는 명복씨와 동생만 데리고 남하했다. 할아버지한테 잠시 가 있으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남매가 다시 만나기까지 5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황해도 출신의 이금자(86·여)씨는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다가 끝내 통곡하고 말았다. 인민군을 피해 아들을 떼어놓고 남편과 함께 거제도까지 내려온 이씨였다. 북한 땅에 두고 온 언니 한 명과 여동생 둘은 불귀의 객이 됐다.

상봉을 닷새 앞두고 숨을 거둔 모친 서정숙(90)씨 대신 상봉에 참여한 김용자씨는 피란길에 대동강을 건너던 배가 난파돼 헤어진 북녘의 언니 김영실(68)씨에게 어머니 영정 사진을 전했다. 영실씨는 “엄마 사진”이라며 가슴에 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64년 만에 만난 부자…“통일될 때까지 죽지 말자”

전쟁터에서 총을 겨눴던 형제는 여든을 훌쩍 넘긴 노인의 모습으로 부둥켜안았다. 휴전선 인근 경기도 연천군에서 살던 강완구(81)씨는 이날 다섯 살 터울의 형 강정구(86)씨와 만나 회한의 눈물을 삼켰다. 4남매 중 차남인 강완구씨는 돈을 벌겠다며 서울 외가에 혼자 내려와 있다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형과 헤어졌다. 동생은 국군 육군 3사단 백골부대에 참전하고 형은 인민군에 끌려갔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눠야 했던 형제들은 생존 사실을 지난해 추석 때서야 알았다.

박운형(93)씨는 북한에 두고온 딸 명옥(68)씨와 동생 복운(75·여)·운화(79)씨를 만났다. 박씨는 평양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란 왔다. 석 달이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63년의 세월이 흘렀다. 명옥씨는 박씨가 25살 되던 해 해방둥이로 낳은 딸이다. 헤어질 때 예닐곱 살 소녀였던 딸의 머리엔 서리가 내렸다. 그는 딸과 동생들에게 “통일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며 또 한 번의 기약없는 이별을 미리 준비했다. 강능환(93)씨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들을 64년 만에 만나 “늙었다”는 첫마디를 내뱉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굽은 등과 갸름한 얼굴. 한 눈에 봐도 영락없는 부자 간이었다. 1·4 후퇴 때 결혼한 지 4개월도 안 된 아내와 헤어진 강씨는 아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60여년을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돼 생사확인을 거치면서 아내가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南 최고령 할머니 동생 만나 남측 상봉단의 최고령자인 김성윤(96·여·오른쪽)씨가 20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동생 석려(80·여)씨를 만나 얼싸안은 채 반가워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전시 납북자 가족 상봉…한 가족은 “우리 아버지 아니다”


이번 상봉에선 전시 납북자 3명의 가족도 만났다. 최병관(68)씨는 6·25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고 알고 있는 아버지가 북한에서 낳은 이복남매를 만났다. 아버지 흥식씨는 이미 숨졌다. 세 사람은 처음 본 사이였지만 서로를 “오빠”, “형님”, “동생”이라고 부르며 기쁨에 겨워 흐느꼈다. 전시 납북자 가족으로 인정받은 강원도 출신의 최남순(65·여)씨는 북한의 이복동생들이 가져온 아버지 사진을 보고는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과 다르다”며 부인했다. 이복동생들이 말한 아버지 고향과 직업 등도 최씨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달랐다. 북측에서 나온 상봉자들은 “섭섭해서 어떡합니까”라며 울먹였고, 최씨는 “이리 만났으니 의형제라고 생각하고 상봉행사가 끝날 때까지 같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최씨가 “이렇게 만났으니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미워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자 북측에서 나온 ‘가족’들은 환하게 웃었다.

북측은 납북자 가족에 대한 남측 취재진의 관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납북자 가족들의 상봉 테이블 주변에는 북측 안내원이 여러 명 나와 이산가족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고, 이들을 취재하는 남측 기자들에게도 “한 테이블에 2분 이상 하지 말라”며 규정에도 없는 ‘주의’를 주기도 했다.

김민서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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