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측 “수련목적 학생… 근로자 아니다” 주장
인턴 “학생노동자… 최저 생활비는 줘야” 반박 “진료보조 특근비 및 식대를 지급받지 못함을 이해하며 임상대학원생으로서… 진료참여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수의대를 졸업한 최길동(27·가명)씨는 올해 2월 서울시내 한 사립대학 수의과학대 임상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대학 측은 합격통지와 함께 “인턴지원서와 서약서 한 장을 작성해 제출하라”고 안내했다. 학생들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대학 부속 동물병원에서 인턴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는 서약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학 측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 40만원의 급여(특근비+식대)를 지급했는데 올해부터는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급여 지급을 중단하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하지만 대학 관계자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사실상 입학이 취소된다”고 밝혀 최씨는 서약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에 입학한 뒤 최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혹은 그 이상 근무한 게 벌써 열 달째”라며 “그동안 대학 측에서 받은 돈은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이 대학 외과, 내과, 산과 인턴 및 레지던트 60여명은 누구도 그 이유를 따지지 못했다.
이 대학 동물병원장은 “인턴의는 ‘수련’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이지 근로자가 아니다”며 “지난해 학교 감사에서 급여 지급이 문제 돼 올해부터 지급을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근로장학금 등의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덧붙였다.
수의사 면허를 딴 뒤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선택한 학생들이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터무니없이 적은 급여를 받고 있다.
25일 취재팀이 전국 5개 수의대를 확인한 결과 학교별 상황은 제각각이었다. A대학은 월 급여로 70만원을 지급하고 있고 B대학은 140만원, C대학 80만원, D대학은 60만원을 각각 지급했다. 이 가운데 B대학은 인턴 수의사를 정식으로 선발한 터라 급여를 주고 있었다. 나머지 대학은 학생 신분이다보니 근로장학금 형식으로 쥐꼬리만 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수의대 인턴들은 통상 하루 최소 9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부속동물병원에서 일한다. 하지만 급여는 법정 최저임금(시급 4860원)을 밑돈다. 한 지방대 수의대 인턴 이모(29)씨는 “우리 신분은 학생이지만 생활은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학생노동자”라며 “전문의 수준의 처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원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턴 수의사 박모(30)씨는 “생활은 면허증 없이 실습하는 학부생들보다도 열악하다”면서 “생명을 살리고자 시작한 이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곤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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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급 인턴 동의서 올해 2월 서울시내 한 사립대 수의대 임상대학원 입학을 앞둔 학생들이 학교에 제출했던 서약서 양식. ‘무급 인턴’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상 노동을 제공하는 인턴들은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지난 8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해 소관위 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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