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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나를 지우는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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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15 22:48:06 수정 : 2025-07-15 22: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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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받아둔 지 한 달이 족히 넘은 택배상자를 뜯고 있다. 소형 가전제품이라 뒤늦게 불량인 걸 알게 되면 어찌해야 하나 작은 근심과 함께 손을 움직인다. 복잡한 포장을 뜯는 동안 마음은 좀처럼 설레지 않는다. 물건을 산 시점부터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이 물건이 크게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조우하고야 마는 광고들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잠시만 손가락이 스쳐도 알고리즘은 집요하게 내 일상을 파고든다. 영상을 보고 있을 때, 정보를 검색하거나 SNS를 하고 있는 모든 때 ‘바로 그것’에 대한 광고가 따라붙는다.

‘아직도 사용 안 하고 계세요?’ ‘현대인의 쾌적하고 안전한 삶을 위한 필수품!’ ‘바로 지금, 여기에서만 가능한 할인 특가 링크를 놓치지 마세요. 이 광고에서 나가면 링크가 사라집니다’ 이런 문구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자꾸 멈춰 서고 망설인다. 그러면 이전의 몇 배쯤 되는 광고가 집중적으로 따라붙어 화면을 빼곡히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내게 있어 광고는 일종의 시각공해에 가까운데 문제는 그것이 내 마음속 미묘한 지점을 건드린다는 사실이다. 마치 나만이 도태된 것 같은 감각. 세련되고 완벽한 모두의 삶에서 오직 나만이 누락된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모두에게 당연한 삶에서 나 홀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위화감과 불안감은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광고 논리대로라면 내가 그들과 똑같아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이 갖고 있는 스테인리스 냄비 세트를, 다기능 전자제품을, 다이어트와 건강관리가 동시에 되는 보조약품을 구입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막상 주문을 끝내고 나면 자괴감이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정말 그럴까? 이미 사둔 물건들은 나를 반짝이게 하는 데 실패했는데 새로 산 물건이라고 과연 다를까? 광고에 휩쓸려 불안정한 소비를 반복하는 건 결국 내가 남들만큼 야무지지 못해서, 합리적이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나에 대한 반성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내가 주문한 상품 배송이 시작된다.

다양한 상품을 구매해도 만족할 수 없는 건 그것들 중 내가 정말로 원하는 물건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광고하는 그 제품을,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내게 팔고 싶어 하는 것을,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행의 시류에 편승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연약한 욕망을 나는 사들인다. 타인의 욕망을 대신 채우고 있는 셈이니 내가 충족될 리 없다. 거듭할수록 내가 지워지고, 내가 제일 먼저 소외되는 기이한 형태의 소비를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화면 곳곳에서 반짝이는 광고들에 다시금 시선을 빼앗긴다. 흐린 얼룩처럼 내가 한 뼘 또 지워진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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