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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그릇? 역사책? 기운?… 한글만으론 의미 ‘알쏭달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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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04 01:58:31 수정 : 2011-07-04 0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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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한자, 수레의 두바퀴 “대학생에게 ‘대각선이 뭐냐’고 물어보면 그림으로 그릴 뿐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마주 보는(對·대) 각(角)을 이은 선(線)이라고 한자 그대로 말하면 되는데도…. 유인원도 마찬가지다. ‘사람같이 생기고 털이 많고…’ 이렇게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한자를 모른 상태에서 ‘대각선’과 ‘유인원’은 부호일 뿐이다.”(이명학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한글은 소리를 기호화한 표음(表音)문자다. ‘온세상’의 ‘온’처럼 뜻을 지닌 글자도 있으나 많지 않다. 한자는 낱말 하나하나에 뜻이 있는 표의(表意)문자다. 한글만 써도 상황과 문맥에 따라 어느 정도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확한 개념이 필요한 역사, 과학, 철학 등에서는 그럴 수 없다. 한글과 한자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상호보완적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자를 알아야 한글이 보인다

국어사전 표제어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한글로만 적어 놓으면 뜻을 바로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올려진 ‘사기’라는 표제어는 28가지에 이른다. ‘士氣’, ‘詐欺’, ‘史記’, ‘沙器’ 등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교 교육에서 쓰는 주요 개념과 핵심어는 대부분 한자어다. 고은주 고양 백신중 과학교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학교 과학 교과서 용어의 98%가 한자어로 돼 있다. ‘수정’의 경우 생물에서는 ‘受精’, 지구과학에서는 ‘水晶’, 물리에서는 ‘修正’으로 개념이 다르다.

나일주 서울대 교육행정연수원장은 3일 “수학 개념인 ‘소수’도 ‘小數’와 ‘素數’로 헷갈리는데, 한자로 뜻을 가르치지 못하는 교사가 많다”면서 “본질적인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음 단계의 지식을 습득하면 확신 있는 지식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은주 난향초 교사도 “국어와 수학 교과 성적이 우수한데도 사회와 과학 교과 성적이 낮게 나오는 학생이 있는데, 대개 해당 교과에 나오는 주요 용어의 개념을 몰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한자를 공부하면 어휘력과 독해력이 크게 높아진다. 일례로, 기본적인 한자를 익힌 학생은 순양함이나 초계함, 구축함을 한글로 써 놓으면 모르더라도 한자를 병기하면 순양함(巡洋艦)은 큰 바다를 순찰하는 함선으로, 초계함(哨戒艦)은 망을 보고 경계를 서는 함선으로, 구축함(驅逐艦)은 적 군함이나 잠수함을 몰아서 쫓아내는 전투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쓴 용자례(用字例) 부분. 국어학계에는 한자와의 공존을 생각해서 한글을 네모 반듯한 정사각형 공간에 자음과 모음을 합쳐 쓰도록 했다고 보는 학설이 있다.
한자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


광개토태왕의 비문 1775자 중에 ‘시조(始祖)’, ‘천제(天帝)’, ‘법칙(法則)’ 등 지금도 의미가 통하는 단어가 94개나 된다.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태왕비의 단어가 1600여년간 지속성을 지닌 셈이다. 이 정도로 우리 민족과 2000년의 인연을 이어온 한자를 배우지 않고서는 조상의 역사와 의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고려시대 삼국사기다. 결국 우리 역사를 알려면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청사고(淸史稿)에 이르는 중국의 25사(史)를 연구해야 한다. 치우천황의 동이족 여부 등을 규명해 우리 역사의 지평을 넓힌다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맞서는 것이 된다.

한자와 한문 이해가 높으면 대만과 일본, 중국 등 한자문화권과의 교류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상용 한자만 익히더라도 이들 나라에 가서 도로표지판이라든지 안내문을 읽고, 간단한 필담(筆談)을 나눌 수 있다. 유럽 각국에서는 프랑스어와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등을 자국어와 함께 배우지만 우리는 주변국 언어를 익히지 않고 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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