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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이재명의 ‘굽은 왼팔’과 수많은 김용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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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26 22:58:45 수정 : 2025-06-26 22: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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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 827명
하루 평균 2명꼴로 일터에서 죽어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 6년 됐지만
제2의 김용균·김충현 비극 반복돼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통해 국제무대에 처음 데뷔한 날,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보도된 것은 이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훈훈한 스킨십이었다. 이러한 모습이 연출된 데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연혁이 큰 몫을 했다. 가난과 장애라는 공통점이. 가난 탓에 정상적인 교육을 못 받고 일찍이 선반공 생활을 했던 룰라 대통령처럼, 이 대통령도 빈민촌에서 태어나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후 소년공이 됐다.

룰라 대통령이 금속업체에서 일하다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은 것처럼, 이 대통령 역시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기에 왼팔 손목이 눌리는 사고를 당해 ‘굽은 왼팔’로 살아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 룰라의 잘려나간 왼쪽 새끼손가락과 이재명의 굽은 왼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출직 공무원 신분이긴 하지만, 이 순간 그들이 나눈 대화엔 국경을 뛰어넘는 인간적인 공감대가 있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굽은 왼팔’을 품고 어떤 국정 운영을 그려나갈지.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공교롭게도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하루 전날,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선반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 김충현씨가 기계에 끼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는 비상 스위치가 있었지만, 눌러줄 동료가 없었다. 이것은 데자뷔! 이곳은 2018년, 입사 3개월 차이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같은 사고로 사망했던 시설이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은 노동계에서는 아픈 손가락이다. 사고 당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면서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정하는 노력이 있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 현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바뀐 게 있다면 영정 사진 속 얼굴뿐. 대한민국엔 수많은 김용균들이 있지만, 그들은 대중의 무관심 속에 언론에 짧게 호명되다가 지워지기 일쑤다. 대중의 관심(공급)이 쉽게 모이지 않으니 언론사들도 단신으로 몇 번 전하고(수요) 관심을 거둬버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17’에는 죽는 게 직업인 남자, 미키가 등장한다. 위험한 일에 투입됐다가 죽으면 다시 프린트(출력)돼 교체되는 익스펜더블(expendable·소모품)인 미키에 대해 봉 감독은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이나 지하철 스크린도어에서 사고를 당한 청년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불행한 산재 사고가 나도, 사람만 계속 교체될 뿐 일은 똑같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의 말에 김충현·김용균씨를 대입하면 ‘미키17’은 SF가 아니라 재난 영화로 다가온다.

지난해 일터로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한 노동자는 827명이다. 하루 평균 2명이 일터에서 죽어 나간 셈이다.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하에 이들은 제대로 된 안전 조치를 제공받지 못했다. 위험의 외주화가 부른 사회적 타살이었다. 왜 법을 만들고도 막지 못했을까? 법에 허점이 있는 건 아닐까. 지키려는 의지는 과연 충분한 것일까.

실제로 지난달 19일 경기 시흥시 소재 SPC삼립 제빵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상반신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지만, 수사 당국은 본사 압수수색 영장을 세 차례나 기각했다. 사고 발생 약 한 달 만에야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며 수사가 본격화됐는데, 노동계에서는 수사 당국의 늦장 대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달이면 결정적 증거를 감추기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SPC삼립의 끼임 사고는 이번이 처음에 아니다. 2022년 평택 제빵공장에서, 2023년엔 성남 샤니공장에서 노동자가 사고사했다. 처음 사고가 일어났을 때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했다면 빵을 만들다가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일이 이렇게 반복됐을까.

다시, 소년공 출신인 이 대통령으로 돌아가 보자. 태안화력 김충현 씨의 사고 당일, 대선후보였던 이재명은 SNS에 이렇게 썼다. “일하다 죽는 나라, 더는 용납할 수 없다.” 일하다 다친 ‘굽은 왼팔’을 들어 적어나갔을 언어. 내뱉은 그 말의 무게를 대통령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국회 청소노동자를 찾았던 대통령의 행보가 일회성이 아니길 희망해 본다.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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