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발령 ‘늑장’… 초중교 등교시간 연기 곳곳 혼선 10년 만에 최대 강풍을 동반한 채 예상보다 6시간이나 일찍 한반도를 덮친 7호 태풍 ‘곤파스’가 수도권을 휩쓸고 지나갔다. 전국에서 5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 서울과 인천을 잇는 전철과 서울지하철 2·4호선 운행이 중단되면서 출근길 시민이 큰 불편을 겪었다. 초속 20m의 강풍에 전선이 끊어지고 가로수가 넘어져 전국에서 156만7000여 가구가 정전되고 곳곳에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태풍이 서울을 관통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2일 기상청에 따르면 정오쯤 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 태풍 곤파스가 오전 6시35분 강화도 남쪽에 상륙한 뒤 수도권을 관통해 오전 10시50분쯤 동해로 빠져나갔다.
온 국민이 곤히 잠든 새벽에 태풍이 상륙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 곳곳에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태풍 상륙시각 예보가 정확하지 못한 탓도 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먹통’ 예보·경보시스템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당국은 이날 새벽 수도권 초·중교의 등교시각을 2시간 늦추기로 결정했으나 학부모와 학생에게 제대로 통보되지 않아 학교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기상청이 서울과 경기, 충남지역에 내린 태풍주의보를 태풍경보로 바꾼 것은 강화도에 태풍이 상륙하기 30여분 전인 오전 6시였다. 그렇다 보니 시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벌어진 돌발 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
또 교육과학기술부와 소방방재청은 태풍이 상륙한 이후인 오전 7시쯤에야 수도권 초·중교 등교시간을 오전 11시로 2시간 늦추기로 결정했다. 이마저도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을 통해 알려졌을 뿐 각 학교를 통한 비상연락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혼선을 빚었다.
강풍으로 케이블마저 끊어져 TV를 보지 못한 신모(41)씨는 라디오방송을 듣고 아들의 담임교사에게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으나 “(등교 조정) 통보를 못 받았다. 평소대로 등교하라”는 답을 들었다. 학교 측에서 교사들에게 제때 통보하지 않아 빚어진 일이었다. 교사는 10여분 뒤 신씨에게 전화를 걸어 “2시간 늦어진 게 맞다”며 번복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A중학교에 다니는 박모(13)군은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어떤 반은 제 시간에 등교하라고 하고, 어떤 반은 늦게 나와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며 “아침에 일찍 나온 학생들끼리 PC방에 가서 빈 시간을 때웠다”고 전했다.
소방방재청이 각 이동통신사에 긴급 재난문자방송을 송출해 해당 지역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재난문자방송 서비스 시스템(CBS)을 갖추고 있으나 결국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사용자가 크게 늘고 있는 스마트폰 등 최신 휴대전화에서는 이 서비스마저도 무용지물이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태풍으로 157만에 가까운 가구의 전기가 끊겼는데도 한국전력과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구축되지 않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나기천·조현일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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