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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쿠바 아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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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6-20 16:00:01 수정 : 2008-06-20 1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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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 커피 향 그리고 체 게바라의 숨결
◇혁명광장의 체 게바라, “Hasta La Victoria Siempre.(승리의 그날까지)” 체 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쓴 마지막 편지의 말이다.
 집 앞에 새로운 커피가게가 생겼다. 커피 맛이 궁금해 낯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피 향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싼다. 한쪽에는 원두가 담긴 여러 개의 통이 놓여 있는데 겉면에 과테말라, 콜롬비아, 자메이카 등의 익숙한 이름이 씌어 있다. 몇 해 전의 중남미 여행이 떠올라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온다. 아이스 카페를 주문하며 물었다. “쿠바에서 온 원두는 없나요?” “커피를 좋아하시나 보네요. 아쉽게도 쿠바산은 없답니다.”

머나먼 나라, 쿠바의 커피는 필자에게 큰 의미가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쓰기만 한 커피를 왜 마시나 싶었는데 쿠바여행을 한 뒤로는 에스프레소 마니아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에스프레소가 보편적이지 않지만 중남미와 유럽 등의 많은 나라에서 아메리카노보다 에스프레소를 주로 마신다. 곱게 간 커피 가루를 꼭꼭 눌러 뜨거운 증기를 투과시켜 뽑은 신선한 커피 원액, 에스프레소. 설탕을 넣어 마시는데 적은 양 때문에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아바나에 도착하자 현지의 한인3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향란과 미란이가 머무는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집에는 몇몇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레이나(Reina) 아줌마다. 레이나는 스페인어로 ‘여왕’이라는 뜻이다. 키가 크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신하들에게 호령하는 여왕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레이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던 필자를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한 말하는 따뜻한 마음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바나의 구시가지 광장

주방에서 처음 본 레이나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아니따(필자의 스페인어 이름), 키에레스 카페?(Quieres cafe·커피 마실래요?)” 커피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쿠바산 커피 맛이 궁금해 마시겠다고 했다. 작은 잔에 새까만 액체를 부어주는데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한 모금 마시니 신기하게도 달콤하다. 보통 에스프레소를 잔에 따르면 기호에 맞춰 설탕을 한두 개 넣어 마시는데 레이나는 모카포트에 설탕을 임의로 넣어 만들었다. 하지만, 정말 맛있다. 유럽의 에스프레소와는 또 다른 맛이다. 너무 맛있어서 연거푸 석 잔을 마셨더니 레이나가 놀란다. “레이나, 부에노! 그라시아스.(Bueno! Gracias·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커피를 기다리는 필자.

레이나는 세라노(Serrano)와 쿠비타(Cubita)를 섞어 만든 커피가루를 사용했는데, 쿠바에서도 잘 알려진 브랜드라고 했다. 쿠바 커피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자 이번엔 한글학교 선생들이 커피가 맛있기로 소문난 구시가지의 카페에 데려가 줬다. 

◇‘여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레이나.
웨이터는 빠른 손놀림으로 에스프레소용 차접시를 놓고 등을 돌려 커피를 뽑기 시작한다. 잠시 뒤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에스프레소 찻잔을 그 위에 올려놓았다. 옆의 쿠바인이 각설탕 두 개를 넣는 것을 보고 따라 넣고 차 스푼으로 저으니 금세 녹아 사라진다.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모금이 입 안 가득 커피 향을 채운다. 쿠바인처럼 두세 모금에 나누어 마시고 찬물을 한 잔 마시니 에스프레소는 이렇게 먹는 거구나 싶다. 나쁘진 않았지만, 레이나가 만든 커피에 비하면 별로다. 이후에도 쿠바 전역을 여행하며 여기저기에서 커피를 마셨지만 레이나가 만든 커피 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레이나가 만든 커피가 그립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한 번 더 집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됐다. 아, 꿀맛 같았던 레이나의 커피. 이번엔 푸딩과 함께 먹었더니 환상적이었다.

레이나는 세계여행 중이라는 필자의 얘기를 듣자 정말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선생들 중 잠이 많은 미란을 가리키며, 그녀는 하루종일 잠만 잔다며 스페인어 ‘도르미르(Dormir·잠자다)’에서 따온 ‘도르미도라(Dormidora)’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여행을 하는 필자는 ‘카미나르(Caminar·걷다)’에서 ‘카미나도라(Caminadora)’라는 별명이 어울리겠단다.

그녀가 지어준 별명은 듣자마자 귀에 착 달라붙었고 세계여행 동안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또, 그녀 덕분에 무겁지만 쿠바공항에서 쿠바산 커피 몇 통과 쿠비타 에스프레소 잔까지 사 오게 됐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모카포트와 쿠바 커피를 꺼냈다. 레이나가 가르쳐준 대로 세라노와 쿠비타를 반반씩 넣었고 모카포트 안에 설탕을 넣고 휘저었다. 쿠바 커피 향이 방안을 감돌자 레이나와 쿠바를 향한 그리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아까운 마음에 조금씩 나눠 마시고 찬물 한 잔을 마셨다. 입이 개운해지며 에스프레소 향이 또 다른 느낌으로 은은하게 퍼진다. 똑같은 재료지만 역시 커피 여왕님 레이나의 손맛을 따라갈 수는 없다. 커피 향이 날 때면 그녀가 마냥 그립다.

여행작가

# 아바나

쿠바의 수도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는 구시가지와 호텔, 아바나대학교 등이 있는 베다도(Vedado) 지역으로 나뉜다. 카리브의 뜨거운 햇살 아래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들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매력적인 쿠바인들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도시를 거닌다. 특히, 아바나는 미국에서 사라진 초기 자동차 모델을 볼 수 있어 ‘살아 있는 자동차 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시가지에는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헤밍웨이가 머물던 호텔과 자주 찾던 카페를 볼 수 있다.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음악과 춤인데 한국에도 잘 알려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로스 반 반(Los Van Van)의 공연을 아바나 시내의 주요 호텔이나 카사 델 라 무지카(Casa del la Musica) 등의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 여행정보

쿠바의 아바나까지 직항은 없다. 대한항공, 멕시카나항공 등을 이용해 멕시코 칸쿤으로 들어가 아바나행 왕복표를 끊거나, 에어캐나다를 타고 캐나다를 경유해 아바나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칸쿤에서 아바나 왕복 비행기표는 300달러 정도이며, 쿠바에 들어갈 때 여행자 카드가 필요하다.

이 카드는 비행기 표를 살 때 포함되어 있는데, 공항에서 25달러 정도에 별도 구입할 수도 있다. 쿠바는 이중화폐를 쓰는데, 쿠바 페소(Peso)와 여행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CUC(세우세)가 있다. 1CUC는 1달러와 가치가 비슷하다.

쿠바에서 신용카드 사용은 불가능하고 현금인출기도 없다. 달러는 환차손이 크기에 캐나다 달러나 유로화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저렴한 숙소로는 25∼50CUC 수준의 민박집인 카사 파르티쿨라가 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으로 물자가 매우 부족하며 식당이나 먹을 만한 메뉴가 별로 없으니 숙소를 정할 때 식사를 포함해 흥정하는 것이 좋다. 쿠바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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