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은 공판에서 냉정한 태도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부장판사 손동환)가 살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조모(42)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밝힌 판결 사유의 일부다. 애초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무기징역으로 한 단계 낮췄다.
서울 관악구에 살던 조씨는 자신의 부인과 6살 난 아들을 살해했다는 이른바 ‘관악구 모자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가정이 있는 40대 남성이 왜 부인과 아들을 살해했을까. 일반인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조씨 역시 수사와 재판 내내 “저는 사랑하는 와이프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라며 “남편이자 아빠로서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조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에 피고인은 대부분 함께 있었다”며 “그 외에 제3자가 살해했을 가능성은 추상적 정황에 그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의 성격과 범행 당시의 갈등 상황에 비춰 인정할 수 있는 범행 동기 등을 종합하면 공소사실이 유죄라고 증명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조씨는 대체 왜 그랬을까. 그는 지난해 8월21일 오후 8시56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35분 사이에 관악구 봉천동 소재 다세대주택에서 아내 A(42)씨와 6살 아들 B군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 당시 사용된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범행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목격자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1심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건 검찰이 제시한 범행 동기에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부는 “범행 당시의 갈등 상황에 비춰 인정할 수 있는 범행 동기”라는 표현을 썼다. 앞서 검찰은 조씨가 오랜 시간 아내 말고 내연녀를 만나 온 점, 가족에 대한 애착이 없어 보이는 점, 보험금을 노린 정황이 있는 점 등이 살인 동기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날 선고된 1심 판결은 이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로 풀이된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가족의 사망 현장 사진이나 부검 사진 등을 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범행 전후로는 ‘진범’, ‘재심’, ‘도시경찰’ 등 살인 범죄와 관련된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을 집중적으로 다운받아 시청했다.
재판부는 “아내와 아들은 죽는 시간까지 피고인을 사랑하고 존중했는데 그 결과는 끔찍했다”며 “오랫동안 불륜관계를 가져온 피고인은 이들을 살해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겼다”고 질타했다.
무기징역 선고 후 피해자 유족은 흐느꼈다. 한 유족은 “솔직히 어떤 형벌이 나오더라도 만족할 수가 없다”며 “공판 과정에서도 전혀 반성하지 않다가 사형이 구형되자 처음 운 것을 보고 정말 용서가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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