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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맥베스’를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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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2-21 14:47:28 수정 : 2011-02-21 14: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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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코끼리 만보의 무해한 잠을 죽인 <맥베스>

셰익스피어는 “잠은, 삶이라는 축제에 자양분을 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맥베스는 그런 ‘잠’을 ‘욕망’에게 송두리째 빼앗겼다. 아니, 스스로 무해한 잠을 죽인 것이다. 극단 코끼리 만보가 11일부터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올리고 있는 연극 [맥베스](연출 이영석)는 이런 시선에서 출발한다.

매일의 삶에서 죽음, 즉 ‘잠’을 맛보지 못한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백익남)는 피비린내 나는 ‘죽음’을 지속적으로 몰고 온다. 잠들어 있던 던컨 왕을 살해한 뒤 왕위에 오르지 않나 왕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동료 뱅코를 살해하기도 한다. 맥베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던컨 왕(선종남)의 아들인 말컴(서현우)을 추대한 맥더프에 대한 보복으로 맥더프 가족을 죽이기까지 한다.

연극 속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한 맥베스와 대비되게 다른 인물들의 달콤한 잠을 보여준다. 죽음과 인간적인 번민 사이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맥베스를 통해 관객들은 죽음 속에서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등 퇴장 없이 텅빈 무대에서 오로지 배우들의 힘으로 70분을 채운 이번 작품은 놀라운 에너지를 품고 있다.

[맥베스] 무대는 객석에 세워졌다. 즉, 원래 무대 자리에 객석을 채워넣고, 객석 자리를 무대로 꾸며놓았다. 이렇게 되면, 무대의 주인공은 관객이 된다. 비극 밖에 동떨어진 채 자리하는 인간의(관객) 이 아닌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관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의도이다. 그 결과 죄의식으로 인한 불안과 양심의 소리에 고뇌하는 맥베스의 내면에 한발짝 가까이 발을 담글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이 연극에서 반짝이는 지점은 직접적인 소품 없이  맥베스의 내면에 흐르는 영혼의 울림을 잘 구현해 낸 뱅코(유성진)의 환영 장면이다. 원을 그리며 도는 인물들 중 유독 뱅코만 방향을 달리 한 채 돈다. 맥베스의 내면과 관객들의 내면을 잘 건드리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맥베스 손에 남겨진 죄악의 흔적이 세상의 모든 바닷물로도 씻을 수 없듯이 양심의 고통과 숙명적 비극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인간임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또한 여타의 [맥베스]공연에서 맥더프(박경찬)의 아들과 함께 출연했던 맥더프 부인(이미지)은 이번 작품에서 뱃속에 아들을 둔 임산부로 나온다. 부풀어 오른 배와 가슴으로 인해 아기가 없는 맥베스 부인(성여진)의 쓸모없는 ‘젖’과 대비되는 효과가 크다. 한가지 더. 극중 실제 이름이 없이 누구 누구의 부인으로 출연하고 있음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는데,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그녀들의 욕망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귀 기울일 수 있게 만든 장치이기도 했다.

마지막 그들은 무대 뒷 편 의자에 앉아 꼼짝없는 ‘잠’ 속으로 빠져든다. 극장을 빠져나가던 관객이 “역시 프로다” 라고 한마디 한다. 프로들이 펼친 무대에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연극이었다.

연희단 거리패의 농밀한 현대적 비극 <맥베스>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은 편안한 부부이자 에로틱한 연인이었다.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 [맥베스](연출 알렉산더 젤딘)를 보고 나서 깨달은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둘 사이가 부부라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출 뿐 연인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단 말이다.

원작의 시각과 조금 달리, [맥베스]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중산층 부부이자 연인 맥베스(윤정섭)와 백베스 부인(김소희) 지독한 사랑과 파멸을 그리고 있다. 부부의 행복을 위해서는 던컨 왕(노심동)을 살해해 왕과 왕비가 되어야 한다. 연극 속에선 맥베스 부인의 내밀한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교태스런 몸짓과 발정난 암고양이의 목소리를 직접 배우 입에서 흘러나오게 하고 있다. 남편 맥베스의 권력에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해 몸의 욕망을 먼저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연희단 거리패 25주년 기념공연이자 2011 게릴라 극장 해외연출가 기획전으로 올리고 있는 [맥베스]는 전지전능한 신을 표현하기 위해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2층 무대 뒷 막에는 무대위 배우들의 연기를 그대로 투영한다.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을 통해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연기를 하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내면을 응시한 맥베스는 더더욱 두려움에 떨게 되고 불안한 눈빛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내보이게 된다.

사말 블랙이 디자인한 2층 무대는 스크린으로 사용되다 커튼이 열리면 불안에 떠는 맥베스 부부를 몰래 엿보는 식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술병과 잔이 들어있던 장식장 무대위에 자리한 올빼미 박제도 눈길을 끈다. 올빼미 박제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올빼미가 매를 죽이고 말들이 서로를 잡아먹은 후 나라 전체가 병들게 된다'는 예언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극단 코끼리 만보의 [맥베스]가 관객의 상상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한 것과 달리, 연희단 거리패 [맥베스]는 피비린내나는 죽음과 소란을 그대로 보여준다. 던컨을 살해한 맥베스와 부인의 손에 묻은 피, 뱅코의 환영이 피묻은 비닐을 쓴 채 등장한 점 등이 그러하다. 게다가 대관식 장면 역시 그대로 재현해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뒤엎는 장면을 시각, 청각에 자극을 주며 보여준다. 이렇게 극이 끝났다면 감흥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의 장면 연출로 인해 관객들의 동공은 점점 커져간다. 대관식 후 난장판이 된 무대는 순식간에 치워지지 않고 하나 하나 또다른 소품으로 이용된다. 예를 들면, 관객의 눈을 거슬리게 했던 얼음 조각은 말콤이 제거하고자 했던 맥베스의 오브제가 되어 한방에 날려지게 된다. 욕망이 발현되기 위해 치뤄진 대관식에 사용된 식탁보는 욕망이 실패로 끝난 뒤 맥베스 부인의 자살에 이용되게 된다. 맥더프 모자가 앉아있던 빨간 깔개는 맥더프 모자의 죽음 후 맥베스 부인의 어깨에 걸쳐지지만 오히려 죽음의 한기를 불러올 뿐이다.

연극은 맥베스의 집 안을 카메라로 천천히 훑어보듯 비춰준다. 무대 뒤쪽에 자리한 작은 모니터 속에선 야생동물들이 서로 물고 뜯는 화면이 나오고 있다. 마치 연극 속 연극처럼 극 곡장소 마방진의 [칼로 막베스]가 모니터를 통해 상영되고 있는거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불러오기도 한 장면이기도 하다.

이후, 모니터 속에서는 유아 프로인 ‘뽀로로와 친구들’이 방영된다. 물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던컨이 말한 것처럼 “얼굴만 보고는 그 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이라는 말에 부합하게 같은 장면을 보고 있더라도 관객들의 머릿 속 생각은 천차만별임을 깨닫게 하는 설정이다. 현대적인 복장과 무대로 거리감을 없앤 이번 작품이 ‘현대적 비극’으로 부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추후 연희단 거리패는 2007년에 한차례 작업(베를린 개똥이)한 바 있는 독일 출신 연출가 알렉시스 부크 씨를 초청해 [아르투로 우이의 출세](4/1~4/23)를 무대에 올린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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