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발레 세계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잠숲미)’는 특별한 작품이다. 발레 동작의 교과서로서 무용수에게는 정확한 자세와 고난도 기교를 요구한다. 발레단에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부터 대규모 출연진까지 대작을 완성할 제작 역량을 요구한다. 주역의 기량과 발레단 전체의 내공을 함께 드러내는 작품이다.
클래식 발레의 황금 콤비 차이콥스키와 마리우스 프티파가 작곡과 안무를 맡아 초연까지 함께 완성한 유일한 발레이기도 하다. 프티파가 음악의 빠르기와 길이를 꼼꼼히 적은 지침을 건네면 차이콥스키는 곡을 썼다. 차이콥스키가 프티파의 집을 찾아가 음악을 들려주면 프티파는 선율에 맞춰 춤을 구상했다. 음악과 춤이 탄생부터 긴밀하게 맞물린 셈이다.
1890년 초연 이후 여러 안무가가 이 작품에 자신의 역량과 해석을 쏟아부었다.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프레더릭 애슈턴·루돌프 누레예프·케네스 맥밀런부터 장크리스토프 마이요·매튜 본까지 시대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이 재공연과 개작에 참여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잠숲미’도 그 흐름을 잇는다. 1952년 콘스탄틴 세르게예프가 키로프(현 마린스키)발레단에서 다듬은 판본을 마린스키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낸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재구성한 버전이다. 1994년 유니버설발레단 창단 10주년작으로 국내 초연했다.
지난 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년 만에 정기공연으로 선보인 이번 무대에서도 유니버설발레단은 발레라는 무용 형식이 지닌 다양한 춤을 화려하게 펼쳐 보였다. 엄격한 형식 안에서 무용수들 개성이 피어났고 춤추는 희열이 객석까지 전해졌다.
2일 관람한 ‘잠숲미’는 마치 동화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느낌이었다. 샤막 뒤로 펼쳐지는 프롤로그부터 관객을 동화 속으로 이끈다. 오로라 공주 탄생 축하연에 초대받지 못한 카라보스가 등장해 저주를 내린다. 막이 걷히면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은 공주의 세계가 펼쳐진다. 축복과 저주로 시작한 동화는 성장과 긴 잠을 거쳐 사랑과 결혼으로 향한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춤이 동화의 한 페이지를 채운다.
1막에서는 무엇보다 로즈 아다지오다. 오로라가 네 구혼자와 차례로 손을 잡고 균형을 이어가는 이 장면은 발레리나에게 까다로운 시험대다. 느린 음악 속에서 자세와 중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균형을 지키면서도 생일을 맞은 공주의 설렘과 우아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유림은 이 고난도 춤을 깔끔하게 완성했다. 정확한 동작이 공주의 기품으로 이어졌다.
공주가 저주에 걸려 잠들고 왕자의 입맞춤으로 깨어나는 1·2막을 지나면 본격적인 춤의 향연인 3막이 기다린다. 파랑새와 플로리나 공주부터 빨간 두건 소녀와 늑대까지 동화 속 인물들이 결혼식 축하객으로 등장한다. 장화 신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는 익살스러운 연기로 즐거움을 더했다. 수석과 솔리스트부터 젊은 단원까지 각자의 기량과 개성을 마음껏 펼치는 무대였다.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간토지 오콤비얀바와 오연의 파랑새 춤이었다. 음악과 움직임이 맞아떨어지면서 춤추는 이들 스스로 즐기는 듯한 무대가 펼쳐졌다. 오연은 오선지를 오르내리는 음표처럼 춤을 췄다. 선율과 한 몸을 이루는 춤사위에서 음악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짧은 춤 안에서도 음악성과 존재감이 선명했다.
이어서 결혼식 그랑 파드되에 나선 이유림은 한껏 피어난 기량을 남김없이 보여줬다. 깔끔한 회전과 교과서에 실린 도면 같은 아라베스크가 주역의 품격을 드러냈다. 올해 수석무용수로 첫 시즌을 보내는 그는 고전발레가 요구하는 선과 자세를 또렷하게 구현했다. 전성기를 열어젖힌 무용수의 춤이었다. 데지레 왕자를 맡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역시 도약과 회전에 관록을 담아 결혼식 무대를 완성했다.
주역의 품격과 젊은 단원의 재능이 어우러졌다. 고전발레의 형식미 안에서 춤추는 이와 보는 이가 즐거움을 함께한 공연이었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16∼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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