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오피스 수익 ‘뚝’…10년 전 수준
대작은 춘제로, 관객은 숏폼·여행으로
2027년 춘제, 극장 영화 생존력 시험대
중국 정부는 올해를 ‘영화 경제 진흥의 해’로 정했다. 관객에게 할인권을 뿌리고, 지역마다 영화와 소비를 결합한 행사를 열었다. 극장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하반기 최대 성수기인 국경절 연휴(10월 1∼7일) 영화관은 다소 썰렁했다. 관객의 영상오락 수요가 숏폼 드라마나 온라인 스트리밍 같은 다양한 콘텐츠로 분산되면서 극장을 찾을 이유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여기에 투자사들이 실패 위험이 큰 신규 대작보다는 검증된 IP(지식재산권·확인된 원작이나 시리즈)와 안전한 개봉 시즌에만 베팅하면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을 ‘메인 메뉴’가 사라졌다. 관객이 줄어 투자사가 대작 투자를 더 꺼리고, 그래서 다시 볼 만한 영화가 사라져 관객이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 진흥의 해’, 국경절 흥행은 참패
8일 중국 국가영화국 집계에 따르면 올해 국경절 연휴 박스오피스는 11억6500만 위안(약 2270억원)에 그쳤고, 관람객 수는 3199만명 수준에 머물렀다. 2014년 처음으로 국경절 흥행 10억 위안 시대를 열었던 당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밑도는 수치다. 사실상 10년 치 성장분을 통째로 반납한 셈이다.
2019년 44억6600만 위안으로 정점을 찍었던 국경절 박스오피스는 코로나19 이후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한 채 2023년 27억3000만 위안, 2024년 21억400만 위안, 2025년 18억3500만 위안으로 해마다 줄었다. 올해는 그 하락세 폭도 커졌다.
흥미로운 것은 불과 8개월 전, 올해 초 춘제(음력설·2월 15일~23일) 연휴 성적표는 전혀 다른 그림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춘제 박스오피스는 57억5200만 위안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상영 횟수(435만회)와 최다 관객 수(1억2000만명)를 동시에 갈아치웠고, 일시적으로 중국이 북미를 제치고 전 세계 단일 국가 흥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같은 해, 같은 나라, 같은 ‘대목’ 시즌인데 왜 이렇게 온도차가 극심했을까.
◆춘제엔 있었고, 국경절엔 없었던 것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춘제에는 시장 전체를 끌어올릴 ‘앵커’ 영화가 있었지만, 국경절에는 없었다. 춘제 때는 스포츠 코미디 영화 ‘비치인생3’(飞驰人生3)가 혼자서 29억2700만 위안(약 5865억원)을 쓸어 담았고, 더우반 평점 7.5점을 받은 무협 영화 ‘표인: 풍기대막’(镖人·风起大漠)이 개봉 첫날 4위에서 입소문을 타고 2위까지 역주행하며 13억5100만 위안으로 무협 영화 역대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티켓 평균가가 전년보다 6% 떨어졌음에도 전체 매출이 역대급으로 치솟은 건, 이 두 편이 수천만 명을 극장으로 끌어낼 만큼 확실한 ‘필수 관람’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반면 올해 국경절 라인업 12편의 흥행 선두는 추리물 ‘선탐지흔적’(神探之痕迹)의 4억2300만 위안에 그쳤다. 나머지 영화들도 코미디, 호러, 애니메이션까지 장르가 다양했지만, 시즌 흥행을 견인할 대형 상업영화가 없었다. 중박 이상을 책임질 확실한 카드가 단 한 편도 없었던 것이다. 다양성만으로는 ‘반드시 봐야 한다’는 동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저조한 매출로 돌아왔다.
◆황금연휴에 대작이 사라졌다
국가가 영화 진흥의 해를 선포하고 각종 부양책을 쏟아낸 가운데, 왜 하반기 ‘대목’에 대작이 한 편도 없었을까. 중국 매체 아이펑과 터우즈제 등은 이를 일시적 라인업 공백이 아닌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라고 짚었다. 핵심은 자본의 전략 변화다. 10억 위안(약 2003억원)을 투입해 한 해 두 번이나 재개봉까지 감행한 ‘교룡행동’(蛟龙行动)이 4억 위안대 흥행에 그치는 등 최근 몇 년간 초대형 작품들이 줄줄이 참패했다. ‘거액 투자=대박’이라는 업계 공식이 깨진 것이다. 여기에 배우 리스크 하나로 개봉 자체가 날아갈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스타 캐스팅만으로는 더 이상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학습 효과까지 겹치면서, 투자사들은 고위험 대작 대신 여러 중소형 영화에 나눠 거는 ‘분산 투자’로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중소형 영화 여러 편이 제각각 선전해도, 그중 누구도 혼자서 시장 전체를 밀어 올릴 체급은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숏폼·AI 드라마 같은 새 콘텐츠 포맷이 관객의 시간과 투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국경절 극장가 부진의 또 다른 배경이다. 48시간이면 완성되는 숏폼·AI 드라마 시장 규모는 올해 1200억 위안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중국 극장 영화 전체의 연간 흥행 수익(약 480억 위안)의 두 배가 넘는다. 이미 이용자 7억명을 끌어모은 이 시장으로 창작 인력과 투자금이 빠르게 옮겨가면서, 애초에 대작을 만들 토양 자체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절의 단골이던 애국 서사 대작들마저 입소문 효과가 더 큰 춘제나 하계 시즌으로 옮겨가면서, 국경절이라는 특정 시즌만 텐트폴 공급원을 통째로 잃어버린 모양새가 됐다.
여기에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그룹 리서치는 ‘소비 심리 위축’과 길어진 황금연휴에 관객들이 영화 대신 여행을 택하는 ‘대체 소비’ 현상이 안 그래도 약한 영화관 수요를 한 번 더 깎아 먹었다고 분석했다.
◆다음 승부처는 2027년 춘제
그래서 다음 관전 포인트는 ‘중국 관객이 극장을 떠났는가’가 아니라, ‘검증된 대작이 돌아왔을 때도 관객이 움직일 것인가’다. 그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큰 시점은 2027년 춘제다. 중국 SF 블록버스터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유랑지구’ 시리즈의 3편 ‘유랑지구3’(流浪地球3), 신화 판타지 대작 ‘봉신’ 시리즈의 후속작 ‘봉신3’(封神3), 장이머우 감독의 흥행작 ‘만강홍’의 후속작 ‘만강홍2’(满江红2) 등 전작으로 흥행력을 입증한 대형 IP들이 춘제 시장에 나설 것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작품들이 다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낸다면, 중국 영화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뚜렷해진 상황에서도 잘 만든 영화가 지닌 힘, 극장에서만 가능한 관람 경험의 강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 된다. 반대로 검증된 IP들마저 기대만큼 힘을 쓰지 못한다면, 극장 영화의 위기는 특정 시즌의 라인업 공백이 아니라 산업 전반의 장기 침체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한국 영화계가 중국의 국경절 흥행 부진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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