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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그 경계에 대해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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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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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아 개인전

돌 틈 숨어있는 크리스털
자기장으로 뜬 돌·목재 향
보이지 않는 힘 주재료로
베니스비엔날레 韓 대표
30여년 작업세계 총망라

故 솔 르윗 기획전
기하학 패턴 작가 지시문
불특정 다수 실행해 완성
‘개념미술의 선구자’ 조망
국내 미술 전공자들 완성
초대형 ‘월 드로잉’ 백미
무엇을 미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작가가 직접 그리지 않은 그림도 작품이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자력과 향, 한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빛, 우연한 발견까지도 예술이 된다.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 온 ‘작품’의 범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두 전시가 서울 용산구에서 나란히 열리고 있다. 리움미술관에서는 구정아의 30여년 작업 세계를 아우른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우스모스(OUSSSMOS)’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서는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1928∼2007)의 국내 첫 대규모 기획전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가 관객을 만나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발견하지 못해도…

리움미술관 로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곡면 구조물은 낮 동안 빛을 머금었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푸른빛을 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수천개의 작은 자석이 별도의 접착제 없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형태를 이루고, 어디선가 퍼진 향은 공간을 떠돈다. 미술관 바깥 돌 틈에는 크리스털이 숨어 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였던 구정아의 ‘우스모스(OUSSSMOS)’는 1990년대 초기작부터 리움을 위해 제작한 신작까지 약 35점을 한데 모은 국내 최대 규모 미술관 개인전이다. 구정아는 오랫동안 쉽게 지나치는 사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해왔다. 초기에는 방 한구석이나 창틀에 각설탕과 포장지를 놓고, 아스피린을 곱게 갈아 작은 가루 언덕을 만들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후 관심은 중력과 자기장, 인광(燐光), 향과 소리, 온도처럼 형태를 갖지 않지만 주변에서 끊임없이 작용하는 요소들로 넓어졌다.

 

전시 제목의 출발점인 ‘우스(OUSSS)’는 구정아가 1990년대 중반 고안한 말이다. 소리인 동시에 접두사와 접미사이고, 때로 에너지와 물질, 존재와 우주의 다른 이름이 되지만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구정아는 기자간담회에서 “친구들을 웃기고 싶어서 만든 말”이라며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데 우리끼리는 재밌었던 말”이라고 설명했다. ‘우스’와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COSMOS)’를 결합한 것이 ‘우스모스’다. 서로 다른 사물과 힘, 기억과 시간이 만나고 흩어지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구정아의 세계를 가리킨다.

 

이 세계에서는 눈앞에 보이는 물체만이 작품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마그넷 시티즈’의 수천개 자석은 오직 자력으로만 서로를 붙들며 기둥과 벽을 연상시키는 구조를 만든다. 고미술 상설전시실에서는 ‘덴시티, GITD’의 작은 돌 하나가 자기장에 의해 백자 사이 공중에 떠 희미하게 빛난다. 향 작업 ‘FMMA’는 작은 목재 조각에서 시작된 향을 전시장 곳곳으로 퍼뜨린다. 손에 잡히는 사물과 보이지 않는 힘은 작품을 이루는 재료가 된다.

작품을 얼마나 발견하느냐도 관람객마다 달라진다. 야외 지면 가까이에 놓인 바위 모양의 청동 조각 ‘에버’와 미술관 안쪽 천장 모서리에 매달린 ‘바스트’는 한 쌍이지만 한눈에 볼 수 없다. 하나를 봤다면 다른 하나는 기억하거나 상상해야 한다. 구정아는 이 작품 앞에서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븐 스타즈’ 역시 밝을 때에는 절제된 회화처럼 보이지만 조명이 꺼져야 별 주변에 숨겨졌던 빛이 모습을 드러낸다.

 

‘리얼리티 업그레이드 & 엔드 얼론’(2003·2026). 2010년 뉴욕 디아 비컨의 잔디밭에 크리스털을 흩뿌리며 설치되었던 작업. 이번 전시에서는 M2 외부의 돌망태 옹벽(개비온 월) 틈에 50개의 크리스털을 심는 방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리움미술관 제공
‘리얼리티 업그레이드 & 엔드 얼론’(2003·2026). 2010년 뉴욕 디아 비컨의 잔디밭에 크리스털을 흩뿌리며 설치되었던 작업. 이번 전시에서는 M2 외부의 돌망태 옹벽(개비온 월) 틈에 50개의 크리스털을 심는 방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리움미술관 제공

이처럼 때로는 작품을 끝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전시관 창밖 돌망태 옹벽에는 ‘리얼리티 업그레이드 & 엔드 얼론’의 크리스털 50개가 검은 돌 사이에 숨어 있다. 평소에는 주변 돌과 거의 구별되지 않지만 관람객의 위치와 태양의 각도, 그날의 날씨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잠시 반짝인다. 발견할 수도,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다는 우연까지 작품 안에 남겨둔 셈이다. 김성원 부관장은 이런 관람 경험을 두고 “놓치는 것도 보는 것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구정아 역시 “작가의 비전을 관람객에게 강요할 수 없다”며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다 보여줄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30여년 작업에서 계속 이어져온 질문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왜 1초 전과 1초 후가 같지 않을까 항상 생각합니다.” 전시는 12월27일까지.

 

◆지시문으로 구현되는 솔 르윗 작품

 

전시장에 걸린 솔 르윗 작품 설명에는 일반적인 작품 캡션에서는 낯선 항목이 등장한다. ‘첫 실행’과 ‘최근 실행’. 각각 르윗의 지시문에 따라 작품이 처음 구현된 때와 이번 전시에서 다시 제작된 때를 뜻한다. 그 옆에는 실제 제작에 참여한 ‘실행자’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인 13점의 대형 ‘월 드로잉’ 역시 이 같은 방식으로 완성됐다. 솔 르윗 재단 관계자 7명과 국내 대학·대학원 미술 전공자 23명으로 꾸려진 ‘APMA 메이커스’가 함께 참여해 20여일 동안 전시장 벽에 선과 색을 겹겹이 쌓았다. 르윗은 2007년 세상을 떠났지만 월 드로잉은 여전히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작가가 남긴 것은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작품을 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지시문이었기 때문이다.

 

르윗은 1960년대 이후 개념미술의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다. 선과 격자, 정육면체 등 기본적인 기하학적 요소와 규칙, 반복을 통해 하나의 아이디어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음을 탐구했다. 1967년 발표한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에서는 “아이디어가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고 선언했다. 물질적인 결과물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생각과 작동 과정에 예술의 핵심이 있다고 본 것이다.

 

월 드로잉은 이 같은 생각을 작품으로 옮긴 대표적인 형식이다. 르윗은 선과 색, 형태를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야 하는지 적은 ‘지시문(instruction)’을 만들고, 실제 그림은 실행자들이 전시장 벽에 구현하도록 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벽의 크기와 공간, 실행자의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전시가 끝나면 그림은 지워지지만 지시문이 남아 있는 한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

 

‘월 드로잉 #1164’는 이런 작업 방식을 압축해 보여준다. 정사각형을 네 구역으로 나누고 수직·수평선과 두 방향의 대각선을 회전하고 뒤집거나 겹치도록 규칙을 정했다. 정해진 규칙으로부터 수많은 조합이 만들어진다. 완성된 화면 자체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규칙과 체계가 작품의 출발점이다.

 

솔 르윗의 지시문을 ‘APMA 메이커스’가 구현하는 모습(왼쪽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장 내 구현된 작품 ‘월 드로잉 #784’.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솔 르윗의 지시문을 ‘APMA 메이커스’가 구현하는 모습(왼쪽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장 내 구현된 작품 ‘월 드로잉 #784’.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르윗의 아이디어는 월 드로잉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구현됐다. 회화와 판화, 사진, 아티스트북 등에서도 간단한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탐구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R715’는 시판된 런던 지도에서 버킹엄궁과 하이드파크 스피커스 코너, 트래펄가 광장, 세인트폴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잇는 영역을 잘라낸 작품이다. 정보를 보여줘야 할 지도의 중심부를 도려냄으로써 오히려 비어 있는 영역의 형태가 드러난다. 이 작품은 지도와 사진, 종이를 자르고 접거나 찢어 만든 800점 이상의 ‘R드로잉’ 가운데 하나다. ‘100달러 드로잉’으로도 불리는 이 연작에 르윗은 100달러를 넘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하라는 규칙까지 붙였다. 작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유통하고 소유할 것인가에도 하나의 원칙을 적용한 셈이다.

 

전시에서는 이 밖에도 초기 구조물부터 후기의 강렬한 색채 작업까지 르윗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월 드로잉 13점을 비롯해 구조물과 회화, 프린트, 사진, 판화, 아카이브 등 총 45점이 나왔다. 국내에서 그의 작업 세계를 대규모로 조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내년 2월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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