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장학재단의 인재 육성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학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췄던 기존 장학사업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과 미래산업 인재를 선발하고, 진로교육과 산업 현장 체험, 멘토링까지 지원하는 방식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학생 한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업부터 취업과 사회 진출까지 성장 과정 전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가진 산업 현장과 전문 인력, 네트워크를 장학사업에 접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의 호반장학재단은 1999년 설립 이후 27년간 장학사업을 이어오며 누적 장학금 등 지원 규모가 200억원을 넘어섰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1만여 명에 달한다.
올해는 미래산업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춰 장학사업 체계도 손봤다. AI와 신기술, 신소재 등 이공계 우수 인재를 대상으로 하는 ‘호반 이노베이션 장학금’을 신설했다. 지역 특성화고 학생들의 학습과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호반 브릿지 장학금’도 새로 만들었다.
올해 장학금 지원 대상은 약 500명이다. 장학금 지급과 함께 진로 탐색과 취업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이날부터 이틀간 충남 예산 스플라스 리솜에서는 ‘호반장학생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AI 협동 프로그램과 전략적 챗GPT 활용 교육, 장학생 자치활동과 네트워킹 등을 마련했다.
지난달에는 ‘호반 이노베이션 장학생 아카데미’를 열어 장학생들이 호반건설 사옥과 대한전선 연구실 등을 둘러보도록 했다. ‘AI 미래직업과 산업변화’ 강연과 진학·취업 정보 공유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재단이 가진 기업 네트워크를 장학생의 진로 경험으로 연결한 셈이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도 장학금을 넘어 미래산업 인재를 장기간 육성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재단은 올해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 신규 장학생을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모집했다. 장학생에게 학습장학금뿐 아니라 국제대회 참가와 해외 진출 장학금, 글로벌 우수 성과 장학금, 장학생 펠로십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미래산업 스칼러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과학기술 인재 육성이 핵심이다. 학기당 등록금 전액과 연 480만원의 학습장학금을 지원하고, 국제 학술지 논문 게재나 국제학술대회 참가 때 추가 장학금도 지급한다.
여름캠프와 졸업생 멘토링, 이공계 학술교류 등 장학생 사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과거 단순 학비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2021년 장학사업을 ‘현대차 정몽구 스칼러십’으로 개편했다. 미래산업을 비롯해 글로벌, 국제협력, 사회혁신, 문화예술, 사회통합 등으로 인재 육성 영역을 세분화해 운영해왔다.
포스코청암재단도 과학기술과 글로벌 인재 육성에 힘을 싣고 있다.
재단은 지난해 포항과 광양 출신 대학 신입생 40명을 ‘포스코비전장학생’으로 선발하면서 과학 분야 우수 인재의 선발 비중을 확대했다. 장학생에게는 대학 재학 기간 학기당 250만원의 생활장학금을 지급한다.
장학금만 주는 것은 아니다. 해외봉사와 진로 멘토링, 장학생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 포스코비전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20년간 지원한 학생은 676명, 장학금은 78억원에 달한다.
올해는 글로벌 기술·지식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유학장학 사업도 다시 시작했다. 국내 우수 인재가 해외 대학 박사과정에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재단은 국가 간 기술·지식 경쟁이 심해지면서 미래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할 인재 육성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해외 우수 인재를 국내로 끌어들이는 장학사업도 병행한다. 올해 ‘포스코한국유학장학생’ 19명을 새로 선발하고 대상 국가를 전 세계 27개국으로 확대했다.
지원 분야를 넓히는 기업도 있다.
KT&G 장학재단은 중·고교와 대학 장학사업뿐 아니라 문화예술 등 특성화 장학사업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올해 대학생을 대상으로는 ‘AI 상상 그라운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장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체험 콘텐츠까지 제공하는 방식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발레 유망주를 장기간 지원하고 있다. 올해 신규 장학생 5명을 포함해 총 40명을 발레 장학생으로 선발하고 1인당 500만원의 장학금과 마스터클래스 참여 기회를 제공했다.
2016년 시작한 문화예술 장학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104명을 지원했으며 장학금과 교육 기회를 합친 지원 규모는 약 25억5000만원이다.
해외 무대에 진출한 인재에 대한 후속 지원도 이어간다. 지난달에는 발레 분야에서 국제 콩쿠르 성과를 낸 장학생 3명을 ‘글로벌 아티스트’로 선정해 추가 장학금을 전달했다. 문화예술 장학생을 선발한 뒤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성장 단계에 따라 지원을 이어가는 구조다.
기업 장학재단들이 지원 방식을 바꾸는 배경에는 인재를 둘러싼 경쟁 심화가 자리 잡고 있다. AI와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빠르게 바뀌면서 학비 지원만으로는 기업이 원하는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장학금에 AI 교육과 산업현장 체험, 해외 활동, 멘토링과 취업 지원을 결합하는 사례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장학생 입장에서도 돈을 지원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업과 연구 현장을 미리 경험하거나 선배 장학생과 교류하며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업 장학사업의 무게중심이 ‘얼마를 지원하느냐’에서 ‘어떻게 성장시키느냐’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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