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출범 후 대미 투자 확대… 전략 진화
교민위주 사업 넘어 투자금융 주도적 참여
하나銀 ‘마스가 프로젝트’ 금융지원 기여
KB은행, 델핀 FLNG 사업 등 고수익 집중
美 전역 탄탄한 점포망 갖춘 우리·신한銀
로컬시장·기업금융 아우르며 ‘체급’ 키워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등 한·미 경제협력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이를 발판으로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금융사들의 생존 전략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 교민이나 한국계 기업 대상으로 단순 자금 대출과 여신 지원에 머물던 수준은 넘어선 지 오래다. 현지 기업을 인수해 로컬 시장의 심장부에 직접 뛰어들고, 글로벌 대형 투자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콧대 높은 미국 금융 시장의 주류(Mainstream)를 향해 성큼 다가서고 있다.
◆마스가·FLNG 등 ‘금융 징검다리’로
미국에 진출한 시중은행들은 한·미 경제협력을 제2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선과 우량 집단대출(신디케이트론) 등 투자금융(IB)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하나은행 미국 현지법인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5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4배 급성장했다. 하나은행 USA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부각된 한·미 조선협력(마스가 프로젝트) 과정에서 한화그룹이 2024년 6월 미국 필리조선소를 약 1억달러(1380억원)에 인수할 때 금융 지원을 통해 거래 성사에 기여했다.
이병현 하나은행 USA 행장은 지난 2일 뉴욕 맨해튼 지점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필리조선소 인수 건 외에도 현대차의 투자, 삼성전자의 오스틴 반도체 투자 등 관련해 대출 수요 문의가 끊임없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이어 “관세 분쟁 승소 후 환급받아야 하는 한국 중소·중견기업들을 위해 미국 은행들이 거부하는 ‘비거주자 계좌 개설’을 지원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2025년 말 1억달러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을 발판으로 하나은행 USA는 내년 애틀랜타, 2028년 텍사스 등으로 지점망을 넓혀 현재 4개인 점포를 6개까지 확장해 전국구 은행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애틀랜타의 월가라 칭해지는 둘루스, 텍사스 오스틴이나 댈러스 등이 후보지다. 미국 진출 한국 기업 대상 여신 특화 법인인 KEB하나뉴욕파이낸셜은 미 보조금 정책 수혜를 받는 자동차 부품·배터리 등 제조업 중심으로 대출 자산을 4억9000만달러까지 늘렸고, 올 1분기 12억원의 순이익으로 견조한 흐름을 유지했다.
KB국민은행은 맨해튼 뉴욕지점을 거점으로 ‘고수익 IB’에 집중하고 있다. 이 지점 한 곳에서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기준(2025년 6월 말) 37억8600만달러의 자산을 쌓았다.
지난달 초에는 텍사스 앞바다의 초대형 에너지인프라 사업인 델핀 부유식액화천연가스설비(FLNG) 개발사업에서 글로벌 선두 은행들과 공동 대출을 하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국내 금융기관 중 유일한 대표 주선기관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이 사업은 미국 첫 상업용 해상 FLNG 개발사업으로 기대를 모았고, 총 금융주선 규모는 26억7600만달러(약 4조원)에 달했다.
왕성환 KB국민은행 뉴욕지점장은 “대출 조건 협상을 주도하는 공동 주선기관이 되면 높은 수준의 수수료를 추가로 창출하게 된다”며 “과거엔 미국 대형 은행들이 주도하는 거래에 단순 참여하던 수준이었는데, KB국민은행이 그간 쌓아온 기록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들로부터 먼저 공동 주선 제안을 받을 만큼 글로벌 IB 시장에서 위상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왕 지점장은 “델핀 FLNG의 경우 상업성은 검증이 된 것인 만큼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점포 수, 내부통제 강화해 체급 키워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현지에 탄탄한 점포망을 기반으로 리테일과 기업금융을 아우르며 체급을 키우고 있다. 두 은행은 각각 미국 현지법인인 우리아메리카은행(점포 22개), 아메리카신한은행(점포 15개)을 통해 상대적으로 많은 소매점포를 두고 있다. 현지 민족계 은행, 한인 가치 기반의 커뮤니티 은행들을 일찍부터 인수해 점포를 늘려온 결과다.
국내 은행 중 가장 이른 1984년 미국 현지법인으로 설립된 우리아메리카은행의 올 1분기 순이익은 208억원으로, 전년 동기(142억원) 대비 46.5% 증가했다.
조지아·텍사스주 등 남부지역의 성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해 우리은행이 해당 지역 채널을 확대한 것은 한·미 경제협력 국면과 맞물려 빛을 발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영곤 우리은행 뉴욕지점장은 “오스틴, 조지아 등에서 자동차, 반도체, 2차 전지 등의 산업은 대기업에 더해 수많은 협력사가 함께 움직이는 구조여서 큰 금융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며 “우리은행은 미국 진출 한국계 은행 법인 중 점포 수와 규모에서 가장 큰 체급인 만큼 대규모 집단대출을 소화하는 데에 유리한 위치”라고 말했다.
아메리카신한은행은 올 1분기 62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점포 통폐합을 통한 영업 효율성 향상, 한국계 지·상사 중심으로 투자가 확대되고 있는 남부지역 영업인력 확대를 통한 핵심 고객군 확보에 집중한 것 등이 주효했다. 그간 다소 실적이 부진했던 것은 2023년 현지 자금세탁방지(AML) 프로그램 미흡을 이유로 미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으며 사업이 위축됐기 때문인데, 이를 딛고 흑자 전환을 이뤄낸 것이다.
도건우 아메리카신한은행장은 “미 당국의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견고한 내부통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며 “그 결과 향후 사업 확장 시에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다시 현지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자 하는 신한은행은 고객 수요에 귀 기울인 상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한국 자산가들 사이에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트렌드를 반영해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더라도 주택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상품을 내놨다. 기업금융에서는 법률·세무·부동산 등 비금융 영역을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플랫폼’ 구축을 핵심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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