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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통령의 기괴한 선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관련이슈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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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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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인 서기 942년의 일이다. 동아시아 북방의 유목 민족이 세운 나라 거란(契丹)이 고려에 접근했다. 한반도에는 없었던 신기한 동물인 낙타 50필을 이끌고 고려를 찾은 거란 사신은 양국의 친선을 강조했다. 하지만 당시 임금인 태조 왕건(877∼943)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란 사신은 외딴 섬으로 유배를 보내고, 선물이라며 보낸 낙타들은 개성 만부교 아래에 매어 모두 굶겨 죽였다. 학자들은 고려가 거란의 적국인 송(宋)나라를 의식한 데에서 비롯한 조치로 추정한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그가 건넨 선물도 받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7, 8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종료 후 귀국하는 각국 정상들에게 돌린 선물 상자 내부의 모습. 권총 한 정과 실탄 6발, 그리고 에르도안 명의의 감사 서한이 담겼다. AF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7, 8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종료 후 귀국하는 각국 정상들에게 돌린 선물 상자 내부의 모습. 권총 한 정과 실탄 6발, 그리고 에르도안 명의의 감사 서한이 담겼다. AFP연합뉴스

1985년 4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다. 이런 중대한 행사가 열리면 현지 대사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현실이다. 5공화국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미국 조야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교민들 가운데 일부는 전 대통령 방미 반대 집회까지 열고 한국의 민주화를 요구했다. 전 대통령 내외가 보안을 의식해 일반 호텔 말고 대사관저에 투숙했을 정도다. 귀국에 앞서 이 여사는 “그동안 수고했다”며 대사관 직원 부인들에게 선물을 건넸다. 포장을 뜯어보니 구리로 된 전 대통령 흉상이었다. 당시 주미 대사관에 근무했던 어느 외교가 원로는 회고록에서 “섬뜩함을 느꼈다”며 “그런 선물을 어떤 사람이 건의했는지 궁금할 뿐”이라고 밝혔다.

 

설 같은 명절을 맞아 지인들에게 선물을 돌리는 것은 오랜 관행이요, 미덕이다. 2020년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황교안 대표 명의로 조계종 총무원에 한우로 만든 육포 선물 세트를 보냈다. 당장 불교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아무리 불교에 관해 잘 몰라도 그렇지, 스님에게 육식을 권하는 건 결례라는 주장이었다. 한국당은 “배송 과정에서 담당 업체가 저지른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3개월 가까이 다가온 총선에서 불교를 믿는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판이었다. 급기야 황 대표가 직접 “조계종에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애초 선물을 주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 도착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에미네 에르도안 여사, 에르도안 대통령, 이 대통령, 김혜경 여사. 튀르키예 대통령실 제공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 도착한 이재명 대통령 내외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에미네 에르도안 여사, 에르도안 대통령, 이 대통령, 김혜경 여사. 튀르키예 대통령실 제공

지난 7, 8일 이틀 일정으로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열렸다. 한국은 나토 회원국이 아니지만 나토와 한국의 안보 협력 강화를 원하는 나토 사무총장의 초청으로 이재명 대통령도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나토 정상들에게 권총 한 정과 실탄을 선물로 돌린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자연히 이 대통령도 권총을 받았는지에 대중의 이목이 쏠렸다. 청와대는 11일 이 대통령 역시 같은 선물을 수령했음을 확인하며 “경호처의 관리 하에 대통령기록관으로 안전하게 이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외교부·경찰청 간 협의를 거쳐 총기의 국내 반입 승인 절차를 거쳤음도 공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튀르키예의 무기 생산 능력을 자랑하고 싶었겠으나, 참으로 기괴한 선물이란 생각을 지울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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