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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북극에서 보내온 행복한 삶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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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5년간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초기에 발명된 전구는 수명이 영구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영구 수명의 전구는 찾아볼 수 없다. 비단 전구뿐이 아니다. 전기 청소기 같은 단순 전자 기기부터 모바일 폰에 이르기까지 몇 년 지나면 품질이 뚝 떨어진 제품을 새로운 기계로 교체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다.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는 시대에 기술이 문제일 리는 없고 결국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이 물건들은 일정 주기를 갖는 소모품으로 상품화됐다는 얘기다. 더 빨리 버리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이윤이 극대화되는 자본주의의 본성 탓에 늘상 탄소 저감,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공염불에 불과하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착취적이다. 개발을 위해 산을 밀고 나무를 벤다. 동물들의 거주지였던 땅에 인간의 도시를 건설하면서 쫓겨난 야생 동물들의 위험을 과장한다. 그 결과 멸종 위기종 복원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산을 오르는 순간에도 우리는 ‘정복’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대지에 경외감이 없으며 다른 존재와의 공존에 대해서도 둔감하기 짝이 없다.

인류학자이자 오지 탐험가인 정형민 감독은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 여름에 지구의 최북단 알래스카를 찾았다. 원주민을 만나 4년에 걸쳐 그들의 삶의 방식, 가치관을 기록한 끝에 ‘희망의 발견, 알래스카에서’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동남 알래스카의 자연은 더없이 아름답다. 푸른 빙하와 바다. 울창한 삼림. 도시의 열섬에 갇힌 문명 세계의 거주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힐링의 장면들이다. 그러나 카메라의 렌즈는 아름다운 대지의 표피를 넘어 깊숙이 들어간다. 서구 열강들에 침탈당하고 지금은 미국과 캐나다의 영토로 쪼개진 동남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역사가 화면 위에 펼쳐진다. 마을이 전소되고 주민 전체가 몰살당하며 자신들의 고유문화와 언어를 폐기할 것을 강요당하면서도 그들은 굴복하지 않고 고난의 시대를 헤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동남 알래스카의 토착 민족인 ‘클링깃’이라는 이름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북미 인디언’이 아닌 ‘사람’! 수천 년 전 노아의 방주처럼 카누를 타고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여기 남동 알래스카를 ‘방주’라고 부른다. 그들은 스스로를 두 개의 큰 가지를 지닌 나무에 비유한다. 큰 까마귀 반족과 독수리 반족, 그리고 그 아래에 여러 씨족과 가문들. 그들에게 흰 연어 씨족, 곰 씨족, 범고래 씨족, 상어 씨족 같은 이름은 자신이 속한 곳,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 모든 이름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필요한 것만 취하라”고 원로들은 가르친다. 여기에는 소유도 지배도 없다. 그들은 만물에 감사한다.

그들의 삶과 비교하면 우리는 영락없이 대지로부터 뿌리째 뽑혀 나간 존재들이다. 대지와 함께 호흡하는 삶에는 탐욕이 없다. 자연에서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는 삶이 주는 충족감과 풍요로움은 꾸민다고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라고 말한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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