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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얇은소설] 설산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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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삶의 방식도 달랐던 남녀
마음 흔들릴 때마다 설산 바라봐
잡을 수 없고 가까이 하기도 먼
수행하듯 사랑… 마음마저 묵직

‘설산의 사랑’(‘설산의 사랑’에 수록, 오지영 옮김, 글항아리)

번역 워크숍과 강연 등의 행사가 있어서 얼마 전에 중국의 두 도시에서 열흘 넘게 머물렀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와서인지 다음에 중국 작가 중에서는 모옌 이후 누가 그 상을 받게 될지 무척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두 도시 모두 사석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와 한국문학을 전공하는 중국 대학의 관계자들이 언급하는 작가들 이름을 귀담아들었다. 위화나 찬쉐.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거기에 옌롄커의 이름을 덧붙였다. 현재 중국의 젊은 작가들로 대화가 흘러가자 문득 딩옌이 떠올랐다. 위화와 옌롄커가 각각 “젊은 세대 작가 중 가장 뛰어나다”, “역사와 사람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과 기쁨이 묻어난다”라고 찬사를 보낸.

조경란 소설가
조경란 소설가

집으로 돌아와선 작년 이맘때 출간된 딩옌의 소설집 ‘설산의 사랑’을 꺼내 재독했다. 정보가 없다면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쓴 소설인 줄 알지 못할 것이다. 광활한 자연에 대한 표현력과 시선 때문에도. 이번에는 특히 ‘작가의 말’을 읽다가 여러 군데서 멈추게 되었다. “좋은 문장은 수면 위로 군데군데 빛의 반점이 떠오르는 고요한 물”이며 각자 독립된 상태로 행진해야 해서 어디에나 입구와 출구가 있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기회여서 매번 진심을 다해 써야 한다는 단단한 소신이 담긴 문장들에서도. 소수민족 태생의 딩옌의 그 문학적 세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소설이 나에게는 ‘설산의 사랑’으로 보인다.

마전은 마(馬)씨 집안의 막내아들인데 상인인 아버지나 형과 달리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국제무역을 전공하라고 보내준 유학 생활 동안 미술 수업을 듣고 세밀화도 배웠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집안에서 운영하는 티베트 골동품 가게가 있는 샤허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는데 점원인 그 지역 청년이 사망했다. 당장은 보상금 전부를 내놓을 길이 없자 모종의 약속, 인질 비슷하게 마전을 청년의 집으로 보내기로. 그 집에는 할머니와 여동생 융춰, 두 사람이 살고 있다. 마전은 속죄의 마음으로 매일 신선한 과일을 사서 할머니와 융춰에게 주고 대화도 시도해 보지만 자신과 그들 사이에 고원에 내린 눈보다 몇 배 무거운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게다가 서로 종교도 살아온 방식도 다르다.

황량하고 낯설기만 한 샤허에서 마전의 마음을 위로하는 건 고요하게 높이 솟아오른, 움직임도 흔들림도 없이 오직 새하얗고, 봉우리는 밝고 차가운 흰색으로 빛나는 설산뿐인 듯하다. 감정에 따라 평온해 보이기도 하고 숭고한 의지처이자 수호자처럼 느껴지는 눈 덮인 산. 그 고원 지대에는 사원도 하나 있는데 우연히 거기 갔다가 벽화들을 보게 되었다. 마전의 눈에 전형적인 틀이라곤 없이 다양한 화풍과 화법이 어우러져 놀랍게 보이는 벽화들을. 자신의 감상을 지나가는 라마에게 이야기하는 걸 뒤에서 융춰가 듣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융춰 역시 그림을 그리며 사원에서 소실된 벽화를 모사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그 순간은 두 사람의 많은 감정을 바꾸어버린다.

이제 융춰와 마전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예술은 개성의 교류에서 비롯”되며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건 생명이 단 하나밖에 없는 것과 같다는, 이성보다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누게 되어도 두 사람은 서로를,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된다. 마전은 그 집을 떠난 얼마 후 조상이 남긴 땅을 팔아 나머지 보상금을 갚기 위해 형과 함께 다시 돌아간다. 융춰의 눈물 속에서 마전은 본다. 환상 속에 투영된 상상을, 만물을, 서로에게 없는 길을. 융춰의 모습과 눈송이가 쌓이는 대지는 흰색으로 뒤덮여 마전이 매일 우러러보았던 예술, 그리고 설산 같아졌다.

마전과 융춰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설산을 보는 사람들, 잡을 수 없고 가까이 갈 수 없어도 의지처를 잃지 않는 사람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 그들이 꼭 일상의 수행자처럼 느껴지기도 해 책을 덮곤 생각에 잠긴다. 나의 설산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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