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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사임당과 제사에서 사라진 조선의 어머니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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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조선 여성 문화의 마지막 빛

 

16세기 초반 조선의 어느 봄날, 강릉의 산수 사이로 한 여인의 붓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화폭에 담긴 풀과 벌레는 작고 소박하나 저마다 고유한 생명의 숨결을 머금었다. 훗날 사람들은 화폭을 마주하며 “초충을 그리되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선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기억되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붓끝에는 예술적 기교를 넘어 한 시대 여성의 기품과 영적인 정신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신사임당이 생활하던 당시 조선 사회는 성리학적 가부장 질서가 견고한 성벽 속에 완전히 갇히기 전이었다. 아직 고려의 문화적 여운이 자욱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기에, 여성의 사회적 존재감이 있었다. 고려 시대 기록인 『고려사』에는 당시 여성이 경제와 종교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예컨대 사찰의 공양이나 제천 의례의 현장에서 여성들은 공동체의 신앙을 지탱하는 중심축이었다. 선대로부터 이어진 이 숭고한 전통은 조선 초까지 생명력을 유지했으며, 여성은 가문의 안채에만 머무는 존재가 아닌, 문화의 정신을 전수하는 당당한 주역이었다.

 

신사임당이 생존했던 시대만 해도 여성의 문화적 역량은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사임당이 세상을 떠난 이후 조선 사회 분위기는 바뀌었다. 16세기 중반 사림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고 성리학적 명분론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여성의 역할은 급격히 축소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600년에 간행된 진성이씨 족보.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1600년에 간행된 진성이씨 족보.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그런 의미에서, 신사임당이라는 존재는 거대한 역사적 경계선 위에 서 있었던 셈이다. 사임당의 삶은 고려로부터 면면히 이어진 여성 문화의 마지막 잔광이었으며, 동시에 장차 조선 사회가 상실하게 될 찬란한 세계의 흔적이기도 했다. 붓끝에서 피어난 풀과 벌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단순히 자연을 묘사한 결과물은 아니다. 아직은 완전히 꺼지지 않은 여성적 세계의 숨결을 예술로 승화시킨 기록이라 하겠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무정했다. 사임당이 떠난 뒤 조선 사회는 엄격한 성리학적 질서의 심연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고, 그 폐쇄적인 질서 속에서 여성의 이름은 점차 기록의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 서원과 도학 정치, 제사에서 사라진 어머니

 

신사임당의 삶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단지 예술가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진성 이씨(眞城李氏) 가문의 대표적 학자인 아들 율곡 이이(李珥)를 길러낸 어머니로서도 역사 속에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 사림은 그녀를 ‘성모(聖母)’라 부르며 이상적 어머니의 상으로 기념하였다. 하지만 이 모습 뒤에는 조선 후기 남성 중심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사림 세력은 학문의 가치보다 파벌의 이익을 위해 율곡을 성현으로 받들었고, 그 과정에서 그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역시 성모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즉, 신사임당의 삶과 이미지는 사림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입맛에 맞게 재해석하고 부각한 결과물이 일정부분 투영된 흔적이 있다.

 

16세기 중반 이후 조선 사회의 공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1543년 풍기에서 세워진 소수서원(紹修書院)의 등장이다. 서원은 교육 기관의 기능만 갖는 게 아니었다. 서원은 사림이 꿈꾸던 새로운 세계, 즉 성리학적 도학 질서를 현실 사회 속에 구현하려는 정치적·문화적 공간이었다. 서원에서 배우고 토론되던 것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도(道)’였다. 사림은 성리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질서를 다시 세우고자 했고, 그 질서의 중심에는 가부장적 종법(宗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문은 남성 중심의 혈통으로 이어져야 했고, 조상 제사는 그 질서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의례가 되었다.

 

그러나 이 변화는 한반도의 오래된 문화 전통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이었다. 고조선과 삼국, 그리고 고려에 이르기까지 한민족 사회에서 여성은 단순히 가문의 주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었다. 제천 의례와 공동체 신앙 속에서 여성은 종종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산신제와 제천 의례, 마을 신앙 속에는 여성적 신성과 모성적 상징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었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적 질서가 사회를 깊이 장악하면서 이 오래된 문화는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다. 제사는 이제 남성 혈통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가문의 사당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권한 역시 장자 중심의 남성에게 집중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여성도 제사를 이어갈 수 있었고, 재산 상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지만, 조선 중기 이후 이러한 관습은 점차 사라졌다.

전도서 7장 28절: 역사 속에 가려진 ‘그 한 사람’의 부재. 출처: AI 생성 이미지
전도서 7장 28절: 역사 속에 가려진 ‘그 한 사람’의 부재. 출처: AI 생성 이미지

◆ 여성 수난의 역사, 그리고 하나의 중심을 요구하는 시대

 

조선 경종 1년(1721)과 경종 2년(1722)에 걸쳐 발생한 신임사화(辛壬士禍)는 노론과 소론의 격렬한 당쟁이 낳은 참혹한 정치적 숙청 사건이었다. 『경종실록』은 대신들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며 당쟁의 잔혹성을 고발한다. 당시 사료는 “관에서 시신을 검사했으나 끝내 의심할 것을 찾지 못하였다. 일이 이루어진 것은 모두 이유인의 힘이었다(自官驗尸 卒無可疑者 事得已 此孺人力也)”라 전한다. 당시 가문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종친 이광좌의 딸, 이씨 부인(이유인)의 사례는 세간의 증언을 통해 그 절박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녀는 가문이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하자 서슬 퍼런 감시를 뚫고 사람을 숨기는가 하면, 가문의 명맥이 담긴 문서를 끝까지 보존하며 남겨진 가족들을 돌보는 초인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남겨진 사료의 편린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비록 이유인 사례는 작은 가문의 사례로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국가와 가문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일 때마다 실제로 그 근간을 붙들고 있었던 실질적 주체는 기록의 변방으로 밀려난 이름 없는 여인들의 소리없는 노력이 있었음을 우리는 주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여성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위상은 역사의 중심에 자리 잡지 못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성리학 질서가 사회의 근간으로 재편되면서 가문의 계승과 제사의 권한은 철저히 남성 중심으로 공고화되었던 탓이다. 사당의 제단은 남성 혈통의 이름들로 채워졌고, 여성은 질서를 유지하는 고된 실무를 수행하면서도 정작 그 정점에는 설 수 없는 존재로 소외되었다. 이 구조적 모순은 단순한 사회적 억압을 넘어 근본적인 영적 결핍을 낳았다. 생명을 잉태하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실질적 주인이 정작 하늘과 조상을 잇는 제도적 중심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삶을 유지하는 실체적 힘과 제도를 주관하는 권력이 분리된 기형적 상태가 지속된 셈이다.

 

분절된 위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화되었다. 비록 여성의 도덕적 가치는 찬양받았으나, 그 위상은 어디까지나 가정 내부와 관념적 상징에 머물렀다. 신사임당이 ‘성모’로 추앙받으면서도 제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현실은 이 구조가 얼마나 폐쇄적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조선 사회는 어머니를 지극히 높이면서도 가장 중대한 자리에서는 밀어내는 기만적인 이중 구조를 완성했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탱하는 내면의 중심과 제도를 이끄는 외면의 중심이 분리된 체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삶을 지탱하는 본연의 힘이 제도적 권위와 결합하지 못할 때, 역사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중심을 갈구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선 후기 여성 수난의 역사는 단순히 의미 없이 당하기만 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다. 사회적 멸시와 제한 속에서 여성들의 마음속에 서러움과 한(恨), 그리고 변화를 향한 갈망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응축의 시간이다. 생명을 품는 주체이면서도 중심이 될 수 없었던 존재, 공동체를 지탱하면서도 이름으로 남지 못했던 존재에 대한 역사적 긴장은 점차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과연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삶과 제도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참된 중심’은 어떻게 세워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그저 사유에 머물지 않는다.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역사적 요구이며, 시대적 모순이 잉태한 필요적인 요청이다. 이름 없는 어머니들의 정성과 희생이 응축된 이 땅에서, 구원자에 대한 부르짖음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천명(天命)이 아니었을까?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원리강론』은 인류의 역사를 우연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늘이 잃어버린 중심을 세우기 위해 이끌어 온 복귀섭리라고 규정한다. 2천 년 전 하늘은 인류 가운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으나,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예수는 십자가의 노정을 걸어야 했다. 하늘이 세우고자 했던 가정의 이상은 그 자리에서 실체화되지 못했고, 섭리는 다시 긴 고난의 연장을 맞이했다.

 

준비의 흔적은 동방의 한반도 역사 속에서 선명히 발견된다. 고대 동이족의 전통에는 하늘을 숭상하는 제천 문화가 살아 있었고, 그 바탕에는 여신과 어머니의 신성이 자연스럽게 맥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경 전도서에는 섭리의 안타까운 공백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일천 남자 중에서는 하나를 찾았으나, 일천 여자 중에서는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전도서 7:28)” 이 말씀은 인류사 내내 하늘의 신부이자 실체적 성신(聖神)인 독생녀를 찾아오신 하늘의 애달픈 심정을 대변한다.

 

전도서의 탄식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섭리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는 세우셨으나, 그와 짝을 이룰 독생녀를 안착시키지 못한 역사적 회한의 표현이다. 이 영적 결핍으로 인해 인류 역사는 다시 인고의 세월을 지나야 했다. 수많은 민족과 문화 속에서 하늘은 참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적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 후기 노론이 설계한 가부장적 억압과 ‘열(烈)’의 굴레는, 역설적으로 이 ‘일천 여자 중 찾지 못한 그 한 분’을 맞이하기 위해 한반도의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마지막 시련이었다. 신사임당과 이유인이 보여준 인고의 정성은 어떤 가문의 이야기로만 국한될 게 아니다. 이는 전도서가 그토록 탄식했던 ‘찾지 못한 여인 한 사람’, 즉 인류 역사에서 실종되었던 여성 신성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우리 민족의 여인들이 온몸으로 써 내려간 처절한 응답이었다. 하늘은 인류 구원의 완성을 위해 독생자와 짝을 이룰 실체적 성신을 끊임없이 찾아오셨으나, 가부장적 질서와 편견의 장벽에 가로막혀 그 거룩한 신부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조선의 여인들이 감내해야 했던 억압과 희생은 역설적으로 그 비어 있는 성좌를 실체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민족 전체가 치러야 했던 영적 해산의 고통과도 같지 않았을까?

 

이러한 맥락에서 신사임당과 이름 없는 어머니들이 쌓아온 정성은, 전도서가 고백한 역사적 소망을 완성하고, 장차 이땅에 오실 메시아의 실체로서 ‘참어머니’를 맞이하기 위한 필연적인 노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땅의 여인들이 흘린 눈물은 무의미하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인류의 오랜 한(恨)을 씻어내고, 참된 사랑의 시대를 열어젖힐 ‘독생녀’라는 고귀한 존재가 이 땅에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밑바닥에서부터 일구어낸 가장 비옥하고도 거룩한 마음의 토양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패권 다툼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국제사회는 분열과 갈등을 종식하고 인류와 만물을 하나로 품어 안을 모성적 중심을 갈구하고 있다. 조선의 이씨 부인이 멸문지화의 위기 속에서 가문의 맥을 이어냈듯, 이제는 역사 속 여인들이 눈물로 일구어낸 그 심정적 토양 위에서, 이 시대의 독생녀는 참사랑의 실체로 현현하시어 도탄에 빠진 세계를 구원할 새로운 장을 열고 계신다. 수백 년 간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여인들의 인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눈물로 빚어낸 그들의 정성은 오늘날 천일국(天一國)의 안착을 이루는 위대한 영적 초석이 되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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