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어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히는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가 18일 국립오페라단 무대에 올랐다. 1945년 영국 초연 이후 81년, 1979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당시 콜린 데이비스가 이끈 영국 로열 오페라단 내한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 지 47년 만에 이뤄진 국내 제작 초연이다.
작품은 어린 견습 소년을 조수로 부리는 관행이 남아 있던 영국 동해안의 작은 어촌을 배경으로 한다. 데려온 소년들을 잇달아 잃은 어부 피터 그라임스에게 마을은 의심과 소문으로 린치를 가하고, 끝내 그를 바다로 내몬다. 사회적 타살이다.
사랑을 노래하는 여느 오페라와 달리, 이 작품에는 사랑을 속삭이는 아리아가 없다. 제 처지를 탄식하는 인물들의 음울한 노래가 불협화음처럼 이어질 뿐이다. 무엇보다 극을 끌고 가는 것은 합창이다. 54명에 이르는 합창단이 소문과 지레짐작을 사실로 단정하며 한 사람을 몰아가는 집단으로 살아 움직인다. 바다 빛에서 군청빛으로 물들인 그라데이션 의상을 똑같이 걸친 이들은, 무대 위에서 개별성을 지운 하나의 거대한 집단처럼 보인다. 연출가 줄리앙 샤바는 이 작품을 “신화나 동화가 아니라 동시대적이고 보편적인 사회 드라마”라고 말했다. 혐오와 배제, 집단 린치라는 주제는 마녀사냥의 시대에서 온라인 여론 재판의 시대로 옷만 갈아입었을 뿐, 조금도 낡지 않았다.
다만 ‘오해와 소문이 빚은 비극’이라는 작품 홍보 문구는 보기에 따라선 동의하기 쉽지 않다. 집단이 한 개인을 극한으로 몰아간다는 구도는 지켜지나, 국립오페라단 무대 속 주인공 그라임스는 그렇게 결백하지 않다. 소년이 거듭 죽어 나가는데도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선 견습소년으로서는 너무 어려보이는 어린이를 무대에 올렸다. 그런데도 그라임스는 더 나은 삶으로 올라서겠다는 맹목적 욕심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희생 앞에서도 일말의 반성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를 구원하려는 이웃 엘렌 오포드의 헌신이 어리석어 보일 지경이다.
조지 크래브의 원작 시에서 그라임스는 연민도 가책도 없는 가해자였다. 브리튼은 이를 오페라로 만들면서 그라임스를 향한 혐의를 직접적 살해에서 과실과 방임 쪽으로 옮겨 유죄와 무죄 어느 쪽으로도 단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질문은 피터가 아니라 객석으로 되돌아온다. 결코 무죄이기 힘든 피터를 향한 마을 사람들의 단죄는 과연 정당한가.
연출은 이 질문을 냉정하게 다룬다.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에서 절제된 미학과 섬세한 연출로 호평받은 샤바는 중간중간 심해어 탈을 쓴 사람들의 춤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장면도 넣었으나, 3막에서 연출력을 폭발시켰다. 마을 사람들이 피터를 조리돌리는 장면에서 무용수 김채희가 연기하는 꼭두각시로 피터를 등장시켜 압도적인 한 장면을 빚어냈다. 노란·파란 우비를 뒤집어쓴 채 얼굴이 지워진 인형이 군중의 손에 밧줄로 끌려다니고, 사람들이 머리 위로 플라스틱 상자를 치켜드는 순간, 단죄의 폭력성이 응축된다. 인간이 인간을 인형처럼 끌고 다니는 그 장면은 이 무대가 도달한 정점이었다. 혼이 나간 듯한 피터를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손전등 불빛으로 비추며 추궁하는 대목도 서늘하다. 피투성이 러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텅 빈 무대에 홀로 선 피터가 절규하는 마지막, ‘먼바다로 나아가 배를 가라앉히라’는 냉정한 조언을 따라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대목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대 디자이너 앰버 판덴훅이 설계한 무대는 1·2막에서 회전무대 위 해체된 녹슨 철제 선체를 선술집·바닷가·피터의 집으로 변모시키며 불안정한 정서를 시각화했다. 거대한 배의 골조가 각도를 틀 때마다 공간의 성격이 바뀌고, 그 틈으로 인물들이 오르내린다. 마지막에 이르러선 그 장치를 모두 비워 냈다. 텅 빈 공간을 조명과 연기(煙氣)만으로 망망대해로 바꿔 놓은 극적 전환이 묵직한 잔상을 남겼다. 다만 주변 인물들의 의상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여인숙 주인, 흰 가운의 약제사처럼 시대와 출처가 뒤섞이며, 녹슨 배가 빚어낸 무대의 사실적 질감과 다소 겉도는 느낌을 줬다.
18일 공연 출연진의 가창은 편차가 있었다. 엘렌 오포드를 맡은 소프라노 문수진은 풍부한 성량으로 극을 떠받쳤다. 타이틀 롤의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는 3막에서야 제 실력을 펼쳐 보였다. 알렉산더 조엘이 지휘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흠잡을 데 없는 연주로 클래식 팬들의 기대가 컸던 바다 간주곡의 매력을 충실히 끌어내는 등 좋은 연주를 들려줬다.
흔한 사랑의 이중창 하나 없이 한 인간이 공동체에 의해 바다로 내몰리는 과정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피터 그라임스’는 오페라가 연애 서사를 넘어 당대의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1945년 초연 이후 현대 영어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은 이 문제작을 국내 관객은 수십 년 만에 만났다. 그런데 최근 취임한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은 첫 언론 인터뷰에서 “‘피터 그라임스’는 대중적으로 꽤 난해한 작품”이라며 “점심시간에 전 직원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작품을 함께 공부하는 프리뷰 시간을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단장 개인의 지적 호기심이나 제작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난해한 오페라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흥행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조차 ‘피터 그라임스’ 같은 작품을 다시 만나기란 당분간 쉽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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