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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리얼한 ‘웃픈 일상’… 평온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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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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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내린 JTBC ‘모자무싸’

‘나의 아저씨’ ‘해방일지’ 작가 신작
사회 중심서 밀려 꼬인 인생들
열패감·불안·허무 섬세하게 그려
배우들 연기·삶에 대한 통찰 무기

‘불편한 진실’ 피로감&공감 느껴
“박해영표 드라마 서사 확장”
“스스로 진입장벽 높였다” 평가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지난 24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화에서는 각자의 상처와 무가치함을 버텨낸 인물들이 마침내 각자의 안온함에 도달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 24일 종영한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인물들의 무가치감과 열패감을 미화 없이 전면에 내세우며 박해영 월드를 확장하는 동시에 스스로 진입 장벽을 높였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지난 24일 종영한 JTBC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인물들의 무가치감과 열패감을 미화 없이 전면에 내세우며 박해영 월드를 확장하는 동시에 스스로 진입 장벽을 높였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스튜디오 피닉스·SLL·스튜디오 플로우 제공

드라마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등을 선보인 박해영 작가의 신작으로, 그의 고유한 감각과 문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모자무싸’라는 제목 그대로, 인물들의 무가치감과 열패감을 전면에 내세우며 한 치도 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에 따른 불편함마저 서사의 일부로 끌어안았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강렬한 공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만들어내며, 박해영 월드를 확장하는 동시에 스스로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

 

◆열패감·무가치함에 대한 정교한 성찰

박 작가는 그간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을 통해 “나는 괜찮은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져 왔다. ‘모자무싸’ 역시 이 흐름 위에 놓여 있지만, 전작의 남자 주인공들이 결국은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인물’에 가까웠다면, 황동만(구교환)은 끝까지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로 밀어붙였다는 점이 보다 과감하다. 황동만은 그 무가치함을 가장 노골적으로 체현하는 인물로, 능력·성취·매력·호감도 등 통상적인 드라마 남주에게 기대되는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짜증 섞인 언성, 짙은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 꼬여 있는 말투와 관계 맺기는 시청자에게 불편함을 넘어 피로감까지 안긴다. 이 대담한 캐릭터 설계가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모험이자 논쟁의 핵심이다.

임희윤 대중문화 평론가는 “박 작가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따라온 팬이라면 이번 작품에서 그의 매력이 더욱 배가됐다”라면서도 “명확하고 간결한 서사를 선호하는 시청자에게는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대사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무기이자 논쟁 지점이다. 누군가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패감, 실패한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려는 마음, 끝없이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대사와 장면 곳곳에 정교하게 스며 있다. 때로는 보기 불편할 만큼 적나라하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감정으로 다가온다.

한 시청자는 “저렇게까지 찌질한 사람이 어딨냐고 욕하면서 보다가도, 어느 순간 내 안의 비슷한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며 “그 지점이야말로 박해영 드라마가 주는 특유의 카타르시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모자무싸’가 끝내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 그리고 대사와 상황의 힘 덕분이다. 특히 구교환과 오정세(박경세 역)를 비롯한 배우들은 대사에 스며 있는 불안과 분노, 허무와 애착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며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화면은 화려한 볼거리 대신 인물의 얼굴과 공간의 분위기를 오래 응시하는 쪽을 택한다. 이 때문에 전개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그 느린 리듬 속에서 감정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는 묘한 매력을 체감하게 된다.

 

◆공감이 쉽지 않은 설정과 인물들

다만 ‘모자무싸’의 이런 장점은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주인공에게 정이 간다’는 대중 드라마의 기본 전제를 의도적으로 비껴간 설정은 대중이 시청 행위 자체를 일종의 ‘도전’으로 느끼게 만든다.

초반 황동만은 자기 연민과 분노에 갇혀 주변을 상처 입히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드라마는 그를 서둘러 변호하거나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설명하지 않는 불친절함’은 박 작가의 스타일이지만, 빠르고 명료한 서사에 익숙해진 요즘 시청자에게는 쉽게 ‘피곤한 드라마’로 인식되기도 했다.

여기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려는 대사는 종종 작가의 문장감이 지나치게 앞세워져 배우의 입을 빌린 메시지 전달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는 듯한 대사가 누적되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 셈이다.

주요 인물들을 영화사·제작사 등 이른바 ‘콘텐츠 업계’ 종사자로 설정한 선택도 ‘무가치함’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다루기에는 공감대와 설득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동만·박경세 등이 느끼는 무가치함은 “작품을 찍느냐”, “흥행하느냐”, “영화제에서 상을 받느냐” 같은 창작·연예계 특유의 고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대부분의 시청자에게 무가치감은 연봉, 조직 내 평가, 고용 안정, 가족 부양, 시험·취업 실패처럼 훨씬 생활에 밀착된 지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 차이 때문에 드라마의 정서와 현실의 체감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콘텐츠 업계 이야기가 박 작가에게 가장 익숙한 영역일 수는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세계”라며 “‘무가치함과 극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더 넓게 전달하고자 했다면 보다 대중적인 직업군으로 확장하는 것도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모자무싸’는 가볍게 재미만을 기대하고 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고,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마음으로 봐야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따라간 시청자에게 드라마가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당신이 느끼는 무가치감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그것과 함께 싸우고 있다.” 이 한 문장이,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이자 존재 이유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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