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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기록의 보고(寶庫), ‘승정원일기’ [조선생활실록(實LOG) 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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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비서실인 승정원이 작성한 기록물
조선 초부터 쓰였으나 상당 부분 소실
병자호란 후 청 태종이 오줌 눈 일까지
상세히 담아 ‘인조실록’보다 훨씬 생생
영화·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의 자양분

“얼마 뒤 갑자기 일어나 단을 내려가 오줌을 누었으므로 상 또한 일어나 단을 내려가 진 밖의 동쪽 모퉁이로 나가서 휴식하였다.”

 

1637년(인조 15) 1월 30일자 『승정원일기』 기록의 일부다.

승정원일기는 조선 초기부터 작성되었으나, 1623년 3월부터 1910년 7월까지 작성한 것만 현전하고 있다. 사진은 1623년 3∼5월 승정원일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승정원일기는 조선 초기부터 작성되었으나, 1623년 3월부터 1910년 7월까지 작성한 것만 현전하고 있다. 사진은 1623년 3∼5월 승정원일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누가 인조 앞에서 오줌을 누었을까? 다름 아닌 청 태종이다. 해당 일자 기록은 남한산성을 나온 인조가 수항단(受降壇: 항복 의식을 치르는 단)이 마련된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3번 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는 모습이 자세히 기술되었다. 청 태종이 갑자기 단을 내려와 오줌을 눴다거나, 큰 개에게 고기를 던져 줬다거나 하는 무례한 행동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조에게 큰 굴욕을 안겨준 일들이었으나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다.

 

『승정원일기』는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에서 작성한 기록물이다. 조선 초기부터 작성되었지만, 현재에는 1623년(인조 1)부터 1910년까지 288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객관적 사실을 가장 많은 분량으로 담은 희귀한 기록물이라는 점을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왕의 동정을 비롯하여 주요 현안, 중앙이나 지방에서 올린 상소문의 원문까지를 수록하고 있다. 왕이 정무를 보던 장소와 시간대별 이동 상황 등을 꼭 기록했기 때문에 왕의 동선(動線)을 구체적으로 파악도 할 수 있다. 역대 왕들이 자신의 병을 신하들에게 이야기하고 약방이나 의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모습, 왕의 기분과 병세, 나아가 왕실 사람들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다. 최장수왕 영조가 즐겨 먹던 음식들도 기록되어 있어서 영조의 장수와 식단과의 관련성 연구에도 도움을 준다.

승정원일기에는 병자호란 패전 후 인조가 청나라에 겪은 굴욕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촬영한 삼전도비 유리건판. 국립중앙박물관
승정원일기에는 병자호란 패전 후 인조가 청나라에 겪은 굴욕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촬영한 삼전도비 유리건판. 국립중앙박물관

1760년(영조 36) 영조 시대에는 청계천 준천(濬川·물이 잘 흐르도록 개천 바닥을 깊이 파냄) 공사가 추진되었는데, 공사 준비부터 완성까지 영조와 신하가 나는 대화들이 『승정원일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영조와 신하들이 나눈 자세한 대화는 마치 그날의 현장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조실록』이 공사 개요만을 간략히 정리한 반면, 『승정원일기』는 청계천 구간별 공사 현황이나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영조실록』 36년 3월 16일에는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한 청계천 준설공사를 완료하고 『준천사실(濬川事實)』이라는 책자를 완성한 내용, 영조가 준천을 한 뒤에 몇 년간 지탱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담당자 홍봉한이 그 효과가 백 년은 갈 것이라고 대답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같은 날짜 『승정원일기』에는 이와 관련한 사항이 매우 자세히 실려 있다. 우선 왕과 함께 면담한 인물들의 관직과 성명, 왕과 신하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기록하여 현장의 생생함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다. 영조가 직접 준천한 경계를 묻자 호조판서 홍봉한이 송전교에서 광통교에 이르는 지역이라고 답했으며, 수표교에서 광통교에 이르는 지역은 넓어서 공사가 힘들었다는 공사의 구체적인 내용, 왕이 직접 『준천사실』이라는 책의 이름을 정한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

1910년 7월 25일 승정원일기 마지막 기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910년 7월 25일 승정원일기 마지막 기사.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승정원일기』에는 실록에는 미처 담지 못한 내용들도 발견된다. 『영조실록』의 1739년(영조 15) 5월 30일의 기록에는 “영조 대에 덕적도(德積島)에 군사시설을 두는 문제를 두고 강화유수가 지도를 작성해 올려 보냈다.”는 내용만 나오고 지도 작성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반면, 『승정원일기』에는 강화유수의 군관 심동상과 경기수사의 군관 이세황이 지도를 제작한 사실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승정원일기』의 자세한 기록을 통해 역사 속에 묻힌 인물을 찾아낼 수도 있는 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조선의 최장수 왕으로 꼽히는 영조의 건강 상태나 즐겨먹던 음식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진은 영조의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승정원일기에는 조선의 최장수 왕으로 꼽히는 영조의 건강 상태나 즐겨먹던 음식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진은 영조의 어진. 국립고궁박물관

1866년(고종 3) 3월 3일 『승정원일기』의 기록에는 고종이 직접 창덕궁 춘당대에 나아가 시험을 치르고 인재를 선발한 기록이 나온다. 이때 왕이 거동한 시간과 수행한 신하의 명단, 복장과 궁궐에서의 이동 경로, 시험 실시 과정, 시상 등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시험 도중 왕과 신하들이 주고받은 대화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에 그날의 과거 시험 현장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준설작업을 위한 준천사를 설치하여 사업을 진행한 경위를 담은 승정원일기로, 영조 36년 2월 18일부터 4월 15일까지 57일간에 걸친 공사에 동원된 인력 및 경비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준설작업을 위한 준천사를 설치하여 사업을 진행한 경위를 담은 승정원일기로, 영조 36년 2월 18일부터 4월 15일까지 57일간에 걸친 공사에 동원된 인력 및 경비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세계 최장의 기록물 『승정원일기』는 과거의 역사 공간 속으로 우리를 생생하게 안내하고 있는 자료로, 문화 콘텐츠 확보나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에도 큰 영감을 줄 수 있는 기록물이다. 한류의 열풍과 문화의 시대를 지향하는 지금의 시대,『승정원일기』가 보유하고 있는 무한한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 총서 1)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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