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보호·웨이퍼 변질 방지
쟁의 기간도 정상 수행돼야”
시설 점거·출입 방해도 금지
위반 땐 하루 1억 지급 명령
노사 ‘평상시’ 해석 신경전도
일각선 ‘하투 연쇄 효과’ 촉각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가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법원이 반도체 생산의 핵심인 설비 보호와 제품 변질 방지 인력의 경우 파업 기간에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핵심 공정 인력 공급을 평시 수준으로 묶어둬야 하는 법적 의무가 부과되면서 파업의 실질적 위협은 제한받게 됐다.
18일 삼성전자가 삼성전자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수원지법 민사31부(재판장 신우정) 결정문에 따르면 법원은 노조 총파업에 따른 반도체 핵심설비 손상을 사후 배상이 불가능한 현저한 손해로 규정했다.
◆“쟁의하더라도 반도체 핵심시설 보호”
법원은 특히 노조가 쟁의행위 기간 중 안전보호시설의 정상 운영을 방해해선 안 된다고 명시해 파업방식에 직접적 제약을 가했다. 재판부는 이날 “채무자(노조)들은 쟁의행위 기간 중 안전보호시설이 평상시(평일 또는 주말·휴일)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시간, 가동규모, 주의의무로써 유지·운영되는 것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거나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다.
이어 “채권자(삼성전자)가 보안 작업으로 주장하는 작업시설 손상 방지 작업,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 등이 쟁의행위 전 평상시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시간, 가동규모, 주의의무로써 수행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법원은 초기업노조와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에 대해 생산시설 점거, 잠금장치 설치, 비조합원 등 근로자의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의무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노조가 결정을 위반할 경우 1일당 각 1억원, 최 위원장 등은 1일당 1000만원을 사측에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결정 근거로 노동조합법 제38조 2항을 언급했다. ‘작업시설 손상이나 원료·제품 변질 방지 작업은 쟁의 기간에도 정상 수행돼야 한다’는 내용 가운데 ‘정상적’이라는 표현을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즉 평시와 같은 상태”라고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법원, 반도체 산업 파급력 인정
특히 법원은 반도체 산업의 기술적 특수성과 세계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생산 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전방 산업의 연쇄 생산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후 금전 배상으로 회복할 수 없는 현저한 손해이자 급박한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사측이 신청한 항목 일부는 기각됐다. 기각 항목은 노조가 쟁의행위 참가를 호소·설득하기 위해 협박을 사용하는 행위, 채권자 소속 근로자와 임직원에 대한 방해 금지, 전국삼성노조 및 위원장에 대한 시설 점거 금지 등이다.
노조 측은 이번 법원의 판단에 대해 “21일 예정된 쟁의활동을 진행할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노사협상에도 타결을 목표로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지부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마중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노조의 주장인 ‘주말 또는 연휴 인력’ 근무가 가능해 7000명보다 더 적은 인력이 근무하게 될 것이어서 사실상 쟁의행위에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조 측은 또 사측에 부서별 필요 인력을 구체적으로 산정해 노조에 통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사측은 노조와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법원은 ‘쟁의행위 기간에도 평상시 수준과 같이 업무가 정상적으로 수행돼야 한다’고 결정했다”며 “평상시의 의미와 관련해 노조는 ‘주말 또는 연휴 인력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히 법원의 결정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법원이 ‘평상시의 평일 또는 평상시의 주말, 휴일’이라고 결정문에 적시한 만큼 평일에는 평일 수준의 인력을, 주말과 휴일에는 주말·휴일 수준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쟁의행위 기간에도 정상 출근이 필요한 부서의 경우 임직원에게 별도로 안내해 생산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하투에 연쇄 효과 촉각
노조가 실제 총파업에 돌입할 때 연쇄 투쟁 효과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여타 기업의 하투(夏鬪) 영향에 대해 “결집의 명분은 주겠지만 그렇게 파괴력이 크진 않을 것”이라며 “7월15일 총파업을 예고한 민주노총의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 투쟁이어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파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조 파업 시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게 되면 노조 투쟁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놨다. 그는 “정부가 무조건 조직 노동자들 요구를 받아주는 건 아니어서 무리한 요구, 권한의 남용에 대해 정부가 정색하고 대응한다는 시그널을 받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카카오 본사 노사가 성과급 등 보상 체계 개편 갈등으로 이날 노동위 조정 절차에 돌입한 것을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과거 교섭 주제는 임금이나 복지에 국한했는데 올해부터는 화두가 ‘성과급’이 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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