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정전 70주년이던 2023년 미국 국방부(현 전쟁부)는 홈페이지에 ‘6·25가 미군에 남긴 5가지 유산’이란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미군이 주도하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사령부가 만들어지는 계기로 작용한 점, 미군 장병 가운데 흑인과 백인이 한 부대에 속해 치른 첫 전쟁이란 점 등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47년 창설된 미 공군이 최초로 실전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미국에 공군은 없었다.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가 있었을 뿐이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영국 등 유럽 국가들처럼 독립 군종(軍種)으로 공군을 만들었다. 초창기 공군은 육군 항공대를 모체로 삼고 해군 군용기 조종사 일부가 합류한 조직이었다.
커티스 르메이(1906∼1990)는 청년 시절 고향인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며 육군 학군단(ROTC) 과정을 이수했다. 덕분에 대학 졸업과 동시에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애초 르메이의 병과는 포병이었다. 그런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육군 항공단으로 옮겨 조종사가 되었다. 미국이 2차대전에 뛰어든 1941년 르메이의 계급은 소령에 불과했다. 전쟁 발발과 더불어 미군은 항공 전력 확충에 전력을 기울였다. 르메이는 1943년 준장, 이듬해인 1944년 소장으로 빠르게 진급했다. 유럽 전선에서 독일 공군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그는 전쟁 말기에는 태평양 전선으로 옮겨 일본군과의 전투를 이끌었다.
어떻게 하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까 궁리하던 르메이는 미군 폭격기가 저공 비행을 하며 일본 도시에 소이탄을 투하하는 작전을 고안했다. 착탄 시 화염을 일으켜 목표물을 불태우는 소이탄은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을 공략하는 데 제격인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무고한 민간인 살상이 우려된다는 점인데, 르메이는 물론 미군 지휘부도 이 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시절만 해도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을 전쟁에 휘말리게 만든 일본을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미국인들을 지배했다. 1945년 3월10일 미군이 단행한 도쿄 대공습은 도시를 거의 폐허로 만들었고 사망자도 10만명 가까이 발생했다. 당시 르메이가 “일본을 석기시대(Stone Age)로 되돌려 놓겠다”고 공언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르메이는 훗날 대장으로 진급해 1960년대에 미 공군참모총장까지 지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지며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 간 핵전쟁 가능성이 현실화했을 때 르메이는 “쿠바는 폭격으로 박살내고 소련과 핵전쟁을 시작하자”는 주장을 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르메이를 ‘용맹한 장수’로 여기는 걸까. 1일 미국·이란 전쟁을 주제로 한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는 “앞으로 2~3주일 동안 이란에 맹렬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며 “그들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겠다”고 말했다. 핵심 군사 시설을 진작 지하에 숨겨둔 이란이 미군의 공습만으로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개전 당시의 판단 착오를 인정하길 거부하는 트럼프 때문에 이란 민간인들만 죽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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