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느냐 보다, 언제 먹느냐가 노화와 암 억제 핵심
강력한 암 치료 수단으로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운동이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를 억제하는 ‘4번째 항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는 것. 최근 전남 여수에서 열린 ‘나파’(NAPA)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장수·암 연구 석학 300여명이 모여 운동과 영양을 둘러싼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집중 조명했다. 나파 송용상 회장은 “운동과 영양은 이제 보조적인 건강 관리법을 넘어, 과학적 근거를 갖춘 ‘제4의 치료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면서 “자기 유전자와 대사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운동과 식단을 처방받는 정밀 생활 의학이 100세 시대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운동은 암 치료의 새로운 약
24일 의학계에 따르면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분야는 ‘운동 종양학’(exercise oncology)이었다. 발표자들은 운동이 암세포가 자라기 어려운 신체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을 과학적 근거로 제시했다.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 치료에 이어 운동이 ‘4번째 항암제’로 불리는 이유다.
명지병원 비뇨의학과 권휘안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이 암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의 분비를 억제하고, 암세포로 유입되는 영양 공급 경로를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운동이 전신 대사환경을 바꿔 암세포의 ‘보급로’를 끊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운동은 암세포의 생존을 돕는 대사 환경 자체를 붕괴시켜 암세포를 굶주리게 만드는 표적 치료 전략”이라며 “이제 운동은 항암 치료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치료 전략의 일부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 문효율 교수는 운동이 선천 면역세포의 성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특히 고강도 운동 시 근육에서 분비되는 인터류킨-15(IL-15) 등의 물질이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도록 만든다고 문 교수는 강조했다.
문 교수는 이를 근거로 단 ‘6초’ 동안 전력 질주를 반복하는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IT)을 제안했다. 그는 “짧더라도 강도 있는 운동이 항암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며 “암 생존자들에게도 운동은 항암 치료 이후 나타나는 ‘가속 노화’를 완화하고, 암 재발의 원인이 되는 만성 염증 경로를 차단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앞서 연세대학교 스포츠응용산업학과 전용관 교수(연세암병원·암예방센터 겸직)는 세계적인 의학 저널 ‘네이처 리뷰 임상 종양학(Nature Reviews Clinical Oncology)’에 게재한 논평에서 “운동은 암 생존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넘어 생존 자체를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라고 강조했다.
이번 CHALLENGE 임상시험은 무작위 배정 3상 연구로, 운동이 대장암 재발을 낮추고 생존율을 높이는 효과를 입증한 첫 대규모 임상시험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해당 연구에는 55개 의료기관에서 총 889명의 대장암 생존자가 참여했다. 항암 치료 이후 3년간 체계적인 운동 프로그램을 수행한 그룹은 일반적인 건강 교육만 받은 대조군에 비해 재발 위험이 28%, 사망 위험이 37% 낮았다. 또한 5년 무병생존율은 운동군이 80.3%, 대조군이 73.9%로 6.4%p 높았으며, 8년 전체생존율은 운동군이 90.3%, 대조군이 83.2%로 7.1%p 차이를 보여 통계적으로 유의한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녹차나 브로콜리 같은 천연 성분 암 억제
운동과 함께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영양학의 접근 방식 전환이다. 이번 학회에서 전문가들은 ‘보편적 건강식’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암 예방과 치료에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 근거로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개인의 유전자, 장내 미생물 구성, 지방 축적, 염증 반응이 크게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유전체·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기반으로 한 ‘초개인화 식단’이 암 예방과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무엇을 먹느냐뿐 아니라, 생체시계 리듬에 맞춰 언제 먹느냐가 미토콘드리아 기능 회복과 노화 속도 지연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간 영양학’ 개념도 공식화했다.
영양학 관점에서 암과 노화의 근본 메커니즘을 뒤집는 발표들도 이어졌다.
미국 오클라마호대학 암연구소 대니 다나세카란 교수는 “그동안 기능이 없는 ‘쓰레기 DNA’로 여겨졌던 비암호화 RNA(lncRNA)가 사실은 암세포의 행동을 조종하는 ‘숨겨진 지휘관’임이 밝혀졌다”며 “녹차나 브로콜리 같은 천연 성분이 이 분자 신호체계를 교란해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브로콜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성하는 피토케미컬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성분이 바로 설포라판이다. 설포라판은 전립샘암, 유방암, 위암, 폐암, 백혈병, 결장암, 간암 세포의 생성을 감소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간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암세포가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신생 혈관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다.
녹차에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세포 손상을 막는 항산화제가 풍부하다. 특히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 같은 카테킨이 많아 몸속 염증을 줄인다. 녹차의 규칙적인 섭취는 암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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