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과 야심 겸비한 ‘요리괴물’
최강록이 묘를 깨친 고수라면
이하성은 여전히 성장하는 중
때는 바야흐로 2024년. 각종 쿡방 요리 프로그램들이 난립하던 춘추전국시대가 저물던 시기에 남다른 보법으로 출몰해 인기를 끈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다. 이미 강호에서 일가를 이룬 무림의 고수 백수저 셰프들과 혹독한 수련을 거친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오로지 ‘맛’으로 승부한 절대 미각의 세계. 기존 예능 프로들은 대개 무명인 간의 경합(‘마스터 셰프 코리아’)이거나, 레전드 간의 대결(‘아이언 셰프’ ‘톱 셰프’ 등)이었다. 그러니까 비슷한 경력을 지닌 이들의 시합이었다. 그런데 ‘흑백요리사’는 계급이라는 조건을 통해 두 세계를 통합시켜 버렸다. 연륜과 패기를 한 상에 멋들어지게 차려낸 대결의 장이 있었던가. 덕분에 ‘흑백요리사’는 단순한 요리 서바이벌에 머물지 않았다. 흡사 고수들이 펼치는 한 편의 무협지 같았다.
나폴리 맛피아(권성준)를 ‘요리지존’으로 배출하며 막을 내린 ‘흑백요리사’는 그 인기에 힘입어 제2회 요리 경연대회를 열었으니, 난다 긴다 하는 요리 고수들이 그 명성을 전해 듣고 모여들었다. 훌륭한 무협지엔 인생철학이 녹아 있기 마련. ‘흑백요리사’에도 세프들 각각의 인생철학이 라운드마다 드러났다. 특히나 ‘나를 위한 요리’를 주제로 한 결승전은 두 도전자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녹아든 명승부였다. 먼저, 최강록. 그의 인생사를 살펴보면 무협지 주인공이 따로 없다. 어린 시절 음악에 심취했으나 음악 입시에 실패한 후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에 매료돼 요리 유학을 떠났다. 유학 후 반찬 가게를 냈으나 큰 적자로 무림을 떠나야 했고, ‘마스터 셰프 코리아’ 우승을 거머쥐며 다시 중원으로 돌아온다. ‘흑백요리사’ 시즌1 출연으로 인지도가 더 높아졌으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줄 모르는’ 심성으로 폐업과 잠행을 거듭했고, 절치부심 끝에 시즌 2에 재도전. 우승을 거머쥔다. 성장 서사가 이토록 드라마틱할 일인가.
그러나 그를 진짜 무협 속 주인공처럼 보이게 하는 건, 두 번의 우승 이력이 아니다.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다. ‘조림핑’이라는 별명의 소유자답게 그는 조림 요리로 결승까지 올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결승전에서 그는 예측 가능한 조림 대신 깨두부를 넣은 국물 요리를 내놓았다. “조림을 잘하는 ‘척’하며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나를 위한 요리까지 조림을 하고 싶진 않았다”라고 고백하면서. 안정된 선택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로 승부를 건 그의 이 말은 강한 울림을 안겼다. 요리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의 분야에서 힘들어도 안 힘든 ‘척’,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고 있어서다. 이 순간, ‘흑백요리사’는 인생 드라마로 또 한 번 도약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요리괴물이 있다. 변화무쌍한 요리로 매 순간 심사위원들의 허를 찔렀던 도전자 이하성. 야심이 있는데 능력이 없거나, 능력은 넘치는데 야심이 없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그는 두 가지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경연 내내 시청자들로부터 빌런 소리를 들은 참가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만만하던 요리괴물은 경연이 진행될수록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 채찍질, 채찍질. 결국 그는 결승전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하지 못했다. 한 번쯤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할 만한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요리괴물을 보면서, 내 안에도 있는 괴물을 봤다. 잘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나 자신에게 모멸찼던 괴물을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최강록이 말한 “잘 아는 척하면서 살았다”는 고백은, 요리괴물의 것이기도 하다. 다른 게 있다면, 연륜이 쌓인 최강록이 이제 그 ‘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묘를 깨친 고수라면, 이하성은 아직 “척”이 중요한 성장하고 있는 30대 신진 고수라는 점이다. 최강록에게도 이하성과 같았던 시절이 있었고, 언제고 이하성에게도 최강록이 깨우친 삶의 묘미를 아는 순간이 찾아갈 것이다. ‘흑백요리사’ 시즌2가 인생 드라마로 보인 이유다. 굉장히 맛있는.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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