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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시라트,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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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어딨는지 아시나요?” 시간이 모호한 모로코 사막의 레이브 파티에서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 군중 속을 헤매며 아버지 루이스는 오래전에 사라진 딸을 찾고 있다. 내장까지 파고드는 압도적인 테크노 음악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이 북부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최면에 걸린 듯 춤추는 군중의 상당수는 유럽인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유럽 ‘시민’이라기보다는 유럽 체제에서 샛길로 새어버린 이탈자들에 가깝다. 거대한 레이브 파티는 사막의 협곡에 세워진 신전이며 이 신전의 주인은 EDM이라는 테크노 신이다. 이곳에서 인물들은 신의 품에 안기듯 저마다의 몸짓으로 무아지경의 제의를 올리고 있다.

이곳에 갑자기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고와 함께 군대가 진격하고 유럽 시민들의 퇴거를 종용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우린 그저 춤춘 것뿐인데~”라는 불만과 함께 일군의 무리가 또 다른 사막의 레이브 파티를 찾아 도주하기 시작한다. 딸이 레이브 파티에 있다고 굳게 믿는 루이스와 그의 아들은 얼결에 이 무리를 따라간다. 이제 상황은 급변한다. 사막은 시야를 방해하는 모래 먼지와 사막용으로 개조한 차마저 빠져나오기 힘든 거친 길로 덮여 있다. 루이스는 이들을 경계하며 따라가지만 이들은 의외로 순수하고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팔과 다리가 없는 신체장애인들. 유럽이라는 대륙에서 육체적, 이념적, 영적으로 떨어져 나온 이들은 사막의 황무지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호 돌봄의 임시 공동체이자 유사 가족이다. 구도자의 기도 소리처럼, 온몸을 음악으로 채우고 이동하는 유목민이자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막의 순례자들이다. 사적 소유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나누는 이들 앞에서 내 차를 위한 기름, 내 가족을 위한 간식을 따로 챙기는 유럽 시민 루이스의 행동은 초라해 보인다. 루이스는 서서히 이들에게 동화된다.

사막에 태양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도록 이들은 끝없이 달린다. 어디로 가는가? 그 길은 어디를 향해 나 있는가? 감독에 의하면 ‘시라트’는 ‘길’을 뜻하는 고대 아랍어이다. 영화의 오프닝 자막에서 소개되듯이 ‘시라트’는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이다. 이 세상은 지옥이다. 사방이 지뢰밭인 지옥의 다리 위에서 누군가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고 누군가는 천국의 계단을 오를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인간도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기준을 알 수 없다.

이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현대 영화의 한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는 점이다. 파국의 끄트머리에서 서사와 멜로디가 지워지고 오직 앰비언트와 그레인만 남겨놓을 때 그것은 현대 극영화가 닿을 수 있는 최대치의 모험이다. 이 강렬하고 시네마틱한 여정 속에서 신과 구원, 인간 실존에 관한 질문에 대한 응답의 멜로디가 마법처럼 들려온다. 쿼바디스 도미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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