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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세 넘으면 90%가 할머니”…정답은 안전장치 ‘X염색체’ 그리고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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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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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늙었는데 결과는 달랐다”…남녀 수명 6년 차의 이유
“근육보다 질기다” 의사들이 말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6년 더 사는 ‘소름 돋는’ 이유

“100세 시대, 왜 종점에는 늘 ‘할머니’들만 남을까?”

 

서울 종로구의 한 경로당. 오전이 되자 바둑판이 펼쳐지고, 가장 연장자인 이는 올해 97세 김모 할머니다. 함께 앉아 있는 남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특별하지 않다. 장수 마을이나 요양시설, 노인정 어디를 가도 최고령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100세 시대, 왜 할머니들이 오래 살까? 사진 =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100세 이상 노인 10명 중 8명 이상이 여성이고, 110세를 넘긴 초고령층에선 그 비율이 90%에 가깝다. 신체 조건만 놓고 보면 남성이 더 강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많지만, 수명 통계는 늘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숫자가 보여주는 격차

 

22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86세를 넘어섰다. 남성보다 약 6년 길다. 이 격차는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큰 변동 없이 이어져 왔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부담을 안고 살아왔고, 노년기 빈곤 위험도 남성보다 높다.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조건이 겹치는데도 평균 수명은 더 길다. 의료계에선 오래전부터 이 모순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몸의 조건, 생활 방식, 관계를 맺는 태도가 겹친 결과에 가깝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노인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령자는 대부분 여성이라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게티이미지

◆호르몬·유전자·면역…몸이 버텨주는 시간

 

의사들이 먼저 언급하는 요인은 호르몬이다. 여성호르몬은 혈관 기능과 염증 반응에 관여해 노화 속도를 완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심혈관 질환 발병 시점이 남성보다 늦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의료계에선 최근 들어 유전적 요인에 대한 해석도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다. 여성에게만 있는 두 개의 X염색체 가운데 하나가 노년기에 다시 작동하면서 뇌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일부 연구자는 이를 “노화 이후에 작동하는 안전장치”에 비유한다.

 

면역 반응에서도 차이가 관찰된다. 실제 진료 현장에선 감염 이후 회복 과정에서 여성 환자의 반응이 더 오래 이어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는 설명이 나온다. 감염을 버티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체력 소모가 덜하다는 것이다.

 

◆‘할머니 가설’…돌봄이 만든 진화의 흔적

 

인류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제기해온 이론도 있다. 이른바 ‘할머니 가설’이다. 출산이 끝난 이후에도 여성이 오래 살아 손주 양육을 돕는 것이 집단 생존에 유리했고, 그 방향으로 진화가 이어졌다는 해석이다.

 

고령 여성들의 삶을 보면 이 가설이 전적으로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실제로 많은 여성 노인들은 가족 내 돌봄의 중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방문진료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 의료 관계자는 “여성 노인들은 아프기 전부터 병원을 찾고, 약 복용이나 생활 관리에도 훨씬 충실하다”며 “평생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온 태도가 자기 관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병원 문턱 앞에서 갈린 선택

 

생활 습관의 차이도 분명하다. 흡연과 음주, 위험 행동, 검진 회피는 남성에게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괜찮겠지’라는 판단이 반복되다 병을 키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응급실 통계를 보면 사고와 외상 환자에서 남성 비중이 높다. 자살률 역시 여성보다 훨씬 크다. 생존을 위협하는 변수 앞에서 남성은 더 자주 위험에 노출된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장수의 얼굴은 점점 ‘할머니’가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90세를 넘긴 노인들을 만나보면 공통점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친구와 연락을 이어가고, 가족 모임을 챙기며, 종교나 지역 활동에 발을 담근다. 특히 여성 노인들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데 익숙하다.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을 쓴다.

 

의료진들은 “고령일수록 사회적 연결이 약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외로움이 흡연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는 이유다.

 

◆오래 사는 사람들의 선택

 

현장에서 마주한 고령자들의 생활은 의외로 단순했다. 매일 걷고, 과식하지 않으며, 잠을 챙기고,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 특별한 비법보다는 지키기 어려운 기본을 오랫동안 이어온 경우가 많았다.

 

전문의들은 성별과 무관하게 같은 원칙을 강조한다. 규칙적인 중강도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수면, 금연, 절주.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장수의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별거 없다. 사람 만나고, 아프면 바로 병원 가는 것”이라며 “혼자 끙끙 앓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설명을 종합하면 여성의 장수는 유전자 하나로 설명되기보다는 오랜 생활 방식과 관계의 누적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장수의 얼굴은 점점 ‘할머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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